멀티툴 사랑

By | 2021-02-13

한국에서 양평 산자락에 살던 시절 2002 년경에 레더맨 멀티툴을 처음 만났습니다. 원래 그 이전에도 멀티툴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긴 했었죠. TV 에서 맥가이버가 위급한 시점마다 주머니에서 꺼내서 이것저것 조물락거리면서 신기한걸 만들고 그래서 위기를 모면하고 악당도 소탕하던 맥가이버칼, 혹은 Swiss Army Knife 입니다. 맥가이버 덕분에 유명해져서 그 당시에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꽤 높았던 물건이죠.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과 열쇠고리롤 쓰던 것들까지 크고 작은 것 다 합치면 이제껏 거쳐간 것이 대여섯개쯤 될겁니다. 지금도 한개 남아있어서 골프백에 넣고 다닙니다. 오랫만에 꺼내보니 예전에 한참 쓰던 것보다 훨씬 툴 종류가 적은 모델이네요. 빅토리녹스 로고도 거의 지워져서 잘 안 보이구요.

그런데 이게 집 골조를 만든다거나 하는 좀 강도가 센 일을 하면서는 다소 약한 느낌이 들어서 잘 안쓰게 되더군요.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레더맨 (Letherman) 의 멀티툴이었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 싶어서 그당시 거금 약 8만원을 주고 온라인에서 구입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래 보이는 레더맨의 플레어 Flair 모델. 이때부터 맥가이버칼은 멀티툴로 생각하지 않고 레더맨이 진정한 멀티툴이라고 간주하기 시작했죠.

Leatherman Flair

산속 언덕배기에 집을 대충 짓고 혼자 고군분투하며 시골생활을 하면서 무척 유용하게 썼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사진으로 다시 보니 20년쯤 전 모델이라 그런지 그다지 스타일리쉬한 스타일은 아니네요. 편의성이야 물론 좋지만요.

플레어 멀티툴이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양평에서 4년 넘게 살고 태국으로 옮겨가서 2년을 살고, 태국에서 캐나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본 기억이 안 납니다. 캐나다에서 영주권을 받고 집을 구입한 것이 10년쯤 전인데 그때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이것저것 공구들을 사들이면서 집수리와 각종 작업들을 하면서 멀티툴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구입한 것이 레더맨의 블래스트 Blast 모델입니다.

Leatherman Blast

이 모델은 핸드그립 부분이 부드러운 플라스틱으로 일부 덮혀있고 손으로 쥐는 모양대로 물결 모양의 곡선 가공이 되어있어서 보기에도 더 예쁘고 사용감도 좋았습니다. 이것의 최후는 확실히 기억합니다. 차에 두었던 것을 누군가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또 한동안 멀티툴 없이 지냈습니다. 워낙에 온갖 공구들을 많이 사기도 했고 많은 공구들이 들어있는 공구가방을 항상 차에 싣고 다녔기 때문에 그다지 필요성을 느낄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끔 필요한 경우가 있긴 해서 한 개를 구입했는데 이번엔 레더맨이 아닌 값싼 업체의 제품을 샀습니다. B/Bury 라는 업체인데 값은 레더맨 브랜드의 절반 정도에 쓸만한 기능들이 좀 더 많은 것이었죠. 그러다가 또다시 레더맨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마존 사이트를 잠깐 검색하다가 바로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다시 한개를 샀습니다. 이번엔 마지막으로 구입하는 것이다라고 마음먹고 가격이 저렴하고 간단하면서도 예쁘장한 모델로 구입했습니다. 그 이름은 스켈레툴 Skeletool. 정말 한눈에 들어오게 예쁘더군요.

Leatherman Skeletool

그래서 이제 다시 멀티툴을 허리에 자주 차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 모델은 휴대성이 아주 좋아요. 워낙에 이것저것 고장나면 살펴봐달라고, 고쳐달라고 하는 분들도 많고 집에도 손볼게 항상 넘치고 있어서 그때그때 유용하게 쓰고 있어서 좋구요. 앞으로 이런 멀티툴을 더 사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더 산다면 이번 경우처럼 예쁘장한 장난감으로 사게 되지 실질적인 공구로 사게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핸디맨에게는 마음의 평화를 위한 마스코트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번엔 잃어버리지 말고 잘 써야겠지요.

그런데 기능이 수십개가 있는 두툼한 멀티툴은 별로 안 좋아합니다. 휴대도 어렵고 가격까지 비싸서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아서요. 어차피 공구들은 쌔고 넘치니까 꼭 필요한 것들만 있으면 됩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3 개의 멀티툴을 한데 모여서 가족사진을 찍어봤습니다. 흐뭇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