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털

By | 2018-03-21

머리에 털의 밀도가 부족함을 항상 느끼며 사는 나에게 있어 우리집 강아지는 어쩌면 부러움의 대상이 될텐데, 이 녀석에게도 고민은 있을 것이다. 너무도 빽빽하게 털이 나 있는데다가 그게 자라는 속도 역시 정신없을 정도라서 이발 한번 시키고 나서 잠깐 잊고 살다보면 어느새 털이 무자비하게 자라버린 모습이 된다. 털이 눈을 가리고, 잎 주위에도 자라서 식사 때마다 입속으로 들락날락하고, 똥꼬에도 털이 길어서 집 밖에서 산책시키다 보면 그 털에 응아한 것이 걸려서 붙은 채로 걸어다니다가 불편을 못 이기고 도로 한복판에서 엉덩이 깔고 앞발로 기면서 엉덩이를 긁어대기까지 하니 멍멍이 스스로도 불편함은 이만저만 아닐테니까 말이다. 부부가 다 바쁘다보니 선뜻 Grooming 예약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차마 보다 못한 큰 아이가 어제 Pet Smart 에 전화로 예약을 해 버렸다. “내일 2시 반이에요. 광견병 주사 맞았다는 증명도 가져오래요.”

털이 길면 대충 이런 모습이다. 예전에 찍어둔 장발 시절 사진.

오늘 예약 시간이 되어 이 녀석을 차에 태우고 가서 접수를 하는데 직원이 Rabies 예방 주사를 맞았다는 증명을 보여달란다. 그래서 목줄에 달고 있는 Tag 를 가리키면서 여기 있다고 하니, 이젠 그걸로 안 되고 동물병원에서 발급한 증명서를 보여야 한다는게 아닌가. 그런건 없는데…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었는데 어느 동물병원을 다니는지 알려달라고 해서 휴대폰에서 온라인 검색해서 번호를 주니까 전화로 멍멍이 이름과 주인 이름을 가지고 확인을 하고 그 뒤에서야 정식으로 그루밍 서비스 접수를 할 수 있었다.

Rabies Vaccine Tag 는 요런 스타일로 생겼다.

Rabies Vaccine Certificate 으로 검색해보니 요런게 나오는데 이것 만들려고 병원을 가면 또 돈이 들어갈테구..  다음번 예방주사 맞출 때 그냥 함께 해달라고 하면 따로 비용을 안 내도 되지 않을까나..

개를 맡기고 이런 저런 일을 처리하다 시간이 되어 멍멍이를 찾으러 갔다. 완전히 새신랑처럼 반짝거리는 모습으로 달려온다. (그런데 얘는 장가 못 간다. 수술을 해서.. ) 내 맘을 읽은걸까? 차 조수석에 앉혀놓고 보니 좀 우울한 표정이다. 그 무겁던 털을 다 제거해 버려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을법하지만 제딴엔 저 공포스러운 곳에서 수모를 겪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사진 한방 박아서 가족 카톡 대화방에 올려서 보고를 마쳤다. 이제 똥꼬털도 제거했으니 더 이상 산책길이 힘들지도 않을테고 한동안은 시원하게 이 모습으로 지내게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