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By | 2016-04-17

고향 고향 내고향 박꽃 피는 내고향.. 이 노래도 어린 시절 자주 불렀고, 내 고향 남쪽 바다..로 시작되는 노래도 부르곤 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것도 있었다. 좀 더 기억을 떠 올려보면 더 많은 ‘고향’ 노래가 나올 것이다. 이런 고향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 공연히 짠한 분위기가 되기도 하고 고향이라는 이미지에 걸맞는 정취에 감싸이기도 하는데, 정작 나에게 고향의 실제 모습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면 바로 이곳이 고향이다 싶은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 태어난 곳은 충북 옥천, 걸음마를 시작했던 곳은 인천, 뛰어다니며 놀만한 나이가 된 곳은 강원도 원주, 대여섯살 부터는 대전에서 살기 시작했다고는 들었는데 그다지 많지도 않은 어릴 적의 기억들은 정작 그게 어느 곳인지 분간이 안 간다. 확실히 어느 곳인지 알 수 있는 것은 대전에서 살던 시절인데, 그나마도 국민학교 입학은 문창동이었고 2학년때부터는 대동으로 이사해서 대전 안에서 전학을 갔다. 그리고 4학년 1년간은 충북 제천에서 살다가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은 거의 끝나갔고 또 대전 안에서 괴정동으로 이사한 나는 바로 힘겨웠던 사춘기로 접어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내 어린 시절 기억속에 나오는 고향은 어디인가?

전통적인 의미의 고향은 나에겐 없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어느 곳을 특별히 내가 자란 고향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다. 그래도 고향, 고향 노래가 나에게 정겹게 들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랄만한 것들이 조금이라도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내가 한참 세상이라는 것을 접하고 배우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고향은 어느 지역이 아니고 그저 기억일 뿐이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고향이 나에겐 없다는 사실에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려나? 글쎄, 요즘 세대에게는 당연히 아닐테고, 내 세대만 해도 상당히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때라서 노래처럼 꽃피는 산골이나 박꽃피는 동네가 고향인 사람은 많지 않았으니 그리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만한 정도는 아닌듯 하다.

우리 아이들은 둘 다 한국에서 태어났다. 큰 애는 만 1살 때 미국으로 가서 처음 배운 언어가 한국어 대신에 영어가 되었다. 1년 반 뒤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 때의 영향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껏 받고 있는 것 같다. 둘째가 2살을 넘기고 첫째가 10살쯤 되었을 때 우리 가족 모두가 태국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2년 넘게 살고는 캐나다로 먼 길을 와서 이제 7년을 살았다. 작은 아이는 말 익히는 것이 늦어서 태국으로 가던 시점에서도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태국에서는 미국계 국제학교 부설 유치원에 들어갔지만 학교 교육은 영어, 사회적으로는 태국어, 집에서는 한국어가 사용되는 상황에서 어느 한가지 언어에도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아쉽게도 한국말은 하지 못하고 거의 영어권 아이가 되어버렸다.

이 아이들에겐 당연히 고향이란 것은 없다. 그게 특별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난 고향은 없어도 고국이라고 할만한 것은 있다.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되고 결혼해서 가족을 이룬 땅, 한국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고국이란 것도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캐나다를 고국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국적은 한국인데 캐나다에 거의 뿌리박고 살고 있다. 국적도 문화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뭔가 자신이 뿌리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이것도 현대에 와서 의미가 상실된 고향의 전통적 개념과 비슷하게 봐야할까. 개발된 한국 안에서 고향이라는 특수성이 사라진 것처럼 거침없이 누구나 해외여행을 할 수 있고 유학을 가고 이민을 떠나고 인터넷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서로 연결이 되는 오늘날에는 고국이라는 개념도 천연기념물 단계로 넘어가 버린 것일까. 어찌 보면 고향이란 것은 어느 나라, 혹은 그 나라의 어느 지역으로 단정짓는 세월은 지났다고 볼 수도 있다. 먼 훗날엔 어쩌면 내 고향은 지구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먼 혹성에 이주해서 살고 있소, 고향에 가고 싶소… 라고 말하는 인류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일은 무작정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사라져가는 것들은 그리워지곤 한다. 고향이라는 개념, 고국이라는 느낌은 어느덧 세계화의 무게에 눌려 과거의 단어가 되어가지만 그래도 그런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은 좀 아쉬운 감이 든다. 실제로 몸이 비빌 수 있는 구석은 아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서 말이다. 내 스스로에겐 아쉽고, 아이들에겐 미안스럽다. 어떻게 달리 마음의 고향이 될 수 있는 가정이라도 만들어주었어야 할텐데, 그게 또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이래저래 시간은 가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정말 여유를 좀 갖고 그런걸 만들어나갈 여유가 없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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