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쓰는 10월의 일기

By | 2012-12-11

지난 10월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꼭 가을 하늘이라서 그런 것만도 아니었고 여름 날이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그저 그럴만한 때가 되었기에 그런 충동이 떠올랐을 것이다. Wonderland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Oxford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받으며 정지한 채로 올려다 본 어느 10월날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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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리움 같기도 하고 아쉬움 같기도 하고 미련같기도 한데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하진 못한다. 그냥 이 마음은 저 구름을 타고 둥실둥실 어디로 가고 싶어한다. 가족을 데리고 캐나다에 온지 만 4년이 거의 다 되었고 한국을 오락가락하던 나도 완전히 엉덩이를 붙이고 살기 시작한 것은 2년이 되었다. 그런데 벌써 좀이 쑤시는걸까…

다운타운 가까이에 있는 Rental property 에 가서 곧 들어올 단기 숙소 고객을 위해 마무리 정리를 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저 하늘, 구름 위에 있는 콩밭에 가 있었나보다. 창밖의 파란 하늘, 유리에 서린 습기, 낙옆이 져가는 나무들… 그런 것들이 가슴에 팍팍 스며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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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Costco 에 들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서 옆을 보니 커다른 컴바인이 옥수수를 베고 있었다. 이 도심 한 가운데에도 농사짓는 땅이 있었구나라고 느끼니 새삼스러웠다. 이 또한 가을날의 한 모습이다 싶다. 가을이 뭐길래.. 그런데 꼭 가을이라서 그런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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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부터 가을은 항상 나를 흔들어왔던 것 같다. 아직 한참 유치했고, 감성이 풍부했고, 그것을 표현함을 수줍어하지 않았으며, 지금보다 더 분위기를 잘 타던 20대 시절에는 열심히 글도 끄적거렸다. 옛날 글들을 읽어본다. 20여년전 20대 중반에 쓴 자전적 성장 소설의 일부다. 실연한 뒤의 심경을 묘사한 것이라 그런지 구구절절 청승맞기 그지없다.

이제 가을은 완전히 가버리고 나는 겨울의 안으로 들어와 있다. 그동안
이 산 저 산을 붉게 타오르게 만들던 단풍도 사라지고 그 산들을 눈이
뒤덥게 될 날을 앞에 두고 있다. 세월은 흘러가고 있다. 가을은 가버렸다.

다시 한해가 지나가면서 앞에 닥치는 의문은 언제나 같은 종류의 것이다.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때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를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의문은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답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답이
없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문득 소리없이 사라져간 그 낙엽들…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왔다가는 그렇게 사라져 갈 것이다. 나는 마른 땅 위에서
구르는 낙옆을 밝고 걸으면서 삶을 생각해 본다. 몸서리 처지는 것은
순간적인 일이다.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는, 아무도 답을 줄 수 없는
그 의문이 떠오를때면 내 몸은 자지러진다.

그 순간을 이기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눈 언저리의 뜨거운 느낌.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푸른 하늘은
잔인토록 투명하다. 다시 고개를 숙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빛바랜
낙엽들. 그런 세상 안에서 하나 둘 눈가에 맺히는 더운 물방울들은

슬프기 때문이 아닌가보다. 차가운 바람속에서… 시퍼런 하늘
아래서… 사막과도 같은 사유 속에서… 느끼게 되는 격정때문이리라.
주체할 수 없는 그것이 뜨거운 눈물을 몸 밖으로 분출해 내는 때문일
것이다.

우리처럼 살았던 낙엽, 가끔씩은 짙은 녹색이 엿보이는 낙엽더미를
밟으면서 이렇게 살아있는 ‘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뜨거운 영혼을 온몸으로 느낄때 그렇게 샘솟아 오르는 격정,
그것은 생명에의 감동, 살아있다는 격정때문일것이다.

난 글쓰기를 마치고 나서는 다시 읽어보는 일이 별로 없다. 오자가 생기건 횡설수설 잡설이 되어버렸건 다시 내글을 읽기에는 너무 수줍어하는 성격이라서다. 그런데 정말 오랫만에 윗글을 다시 읽어보니 허허 웃음이 나온다. 그땐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구나 싶다. 난 어릴 때부터 비교적 냉소적이고 회색분자스럽게 살아왔던 것 같은데 이런 면도 있었구나.. 그런데 조금 더 낡은 장농처럼 방안에서 부대끼고 있는 지금 모습은 과연 뭐가 되었나..

생각해보니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잊어버리고 사는 것에 익숙해 있을 뿐이 아닐까. 청승맞아 보일까봐.. 유치해 보일까봐.. 먹고 살아야하니까.. 어린 자식들 키우는 입장이니까.. 이런 저런 핑계들을 대면서 애써 내비치지 않을 뿐, 속으로는 여전히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싶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이 먹어가면서 얼굴에 주름이 늘고 표피가 두꺼워지고 게다가 시력과 기억력도 감퇴해가는 덕분에 그런 선택적 망각이라는 호사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40을 넘기면서 우울증 시즌도 거쳤고 Panic Attack도 경험했고 Anxiety도 여전히 약간 껴안고 있는 이 정신머리는 이제 50이 되어가는 날의 가을을 맞아 다시 멍한 눈길로 먼 하늘 구름을 바라보고 있나보다. 그냥 저기로 가고 싶다. 같은 하늘 아래지만 다른 흙과 물을 껴안고 있는, 세상 반대쪽 그곳으로 다시 가고 싶은가보다… 늦기 전에 다시 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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