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따라잡기가 이런 것이었나

By | 2012-09-01

아주 오래 전에 한참 어렸던 시절의 나는 항상 독서열에 불타있었고 책이란 것은 눈에 띄는 것마다 다 읽어댔고 집에 배달되는 일간지도 구석구석 다 읽어내려가곤 했다. 그 덕분에 독해력과 작문 실력은 어린아이치고는 꽤 높은 편이었던 것 같았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랄 수도 있는 신문 소설도 열심히 읽어서 초등학교 5학년때였던가, 조선일보에 매일 연재되었던 “별들의 고향”의 내용과 함께 글 가운데 항상 끼어있던 삽화도 몇 개는 아직 기억 속에 살아있다. 그 당시 아이들로서는 훨씬 일찍 사춘기로 접어들던 나에게 섹스라는 단어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곤 했는데 어느날 읽은 기사 내용 가운데 “일본인은 섹스 애니멀”이라고 흉보는 내용의 기사를 접했다. 그게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여기 저기 다른 간행물들에서 봤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물론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그 내용은 일본인들이 성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며 세계 각국에서 그에 대해 손가락질한다는 내용이었고, 이른바 동방 예의지국이라는 한국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훨씬 더 심해서 마치 왜놈들을 발정난 짐승처럼 보게된다는 그런 표현들이 주된 것이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 어떤 것 때문에, 어느 정도라서 그런 것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런 내용을 그대로 믿게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1980년대 후반쯤이었던걸로 기억되는데, 처음 일본으로 업무상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지금의 나리타 공항이 아닌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려고 역을 찾아 들어가서 신문 자동 판매기에서 발견한 “스포츠 도쿄”. 일본은 한국보다 문화적으로 발전한 나라라서 스포츠만 다루는 신문들이 따로 있었구나 싶어서 호기심에 한 부 구입했다. 그런데.. 맨 앞에 펼쳐진 역동적인 야구 경기 사진을 보면서 다음 장으로 넘기고는 바로 한숨이 나왔다. 껍질만 스포츠 신문이었고 안쪽은 연예계 이야기, 성인 비디오 배우, 음란 사진, 포르노 소설 등등의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소설 가운데 하나의 제목은 지금까지 기억난다. “러브 호텔”. 그때 처음 들어보는 표현이었다. AV 배우 소개 코너에는 요상야릇한 포즈를 취한 20대 초반의 여배우 사진과 함께 프로필이 적혀있었는데 좋아하는 체위라던가 신체 부위 가운데 음모 형태 같은 은밀한 취향을 나열해 놓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섹스 애니멀”이란 표현이 바로 기억나면서 이놈들은 어쩔 수 없구먼이라고 혀를 찼다. 공중전화 박스에 갔더니 성매매 여성들의 사진이 들어간 명함 비슷한 것들이 쌓여있었다. 못말린 잡것들…

호텔에 들어가서는 동전을 집어넣고 그 액수만큼 시청하는 성인 비디오를 접했다. 다시 웃기는 놈들이라고 흉을 봤다. 일반 공중파 TV로 채널을 돌리고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상한 내용의 쇼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비디오 카메라를 숨겨놓고 자기네 사람들로 하여금 이상한 행동을 하게 만들면서 그것을 모르는 다른 일반인들의 행동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그 내용들도 몇가지 아직 기억난다. 하나는 아침 출근 시간에 버스 정류장 앞에 누군가 기다리며 서 있는데, 그 옆으로 여러 사람이 몰려가서 자기들끼리 한 줄을 만들고는 처음부터 기다리던 사람의 행동을 보는 것.. 물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새로 만들얼진 줄 맨 뒤에 섰다. 또 다른 것으로는 돈까스 식당에 손님이 들어와서 돈까스를 주문하면 그 옆에 바로 방송국 사람을 손님인척 보내서 돈까스를 먹게 하는데, 이 사람이 젓가락으로 돈까스 조각을 집어먹게 하며 먼저 온 그 손님이 눈치를 보다가 따라서 젓가락을 쓰게 만드는 등등… 이걸 보면서도 내 머리 속으로는 “저질스러운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TV 쇼프로그램을 보니 한국에서는 남녀 두 명이 진행하는데 비해 대여섯명이 한꺼번에 사회를 본다고 서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저질’ 생각이 들었다. 이 인간들은 무슨 소리를 고래 고래 지르면서 방송을 진행했다. 한국에선 당연히 그런 식의 방송은 있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이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한국에서 본 신문에는 일본에서 “이지메”라는 것이 극성이라는 기사가 한참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일본인 특유의 잔인함을 자명하게 보여준다고 표현들을 하곤 했다. 일본인들은 자살을 밥먹듯 한다는 기사는 심심하면 신문에서 볼 수 있었다. “일본은 없다”라는 책 내용에서 기억나는 것 중에 전여옥이 일본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일본인의 잔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있다. 여러 방청객들이 보고 있고 또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일종의 “아침마당”같은 프로그램에서 회 요리사가 살아있는 생선의 살을 완전히 발라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생선은 여전히 아가미를 퍼덕거리며 살아 움직이더라.. 출연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여전히 웃고 떠들더라… 정말 일본인들은 못 말린다.. 라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로부터 몇 년 되지 않아서…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드디어 일본에서 볼 수 있었던 식의, 무늬만 “스포츠 신문”이 가판대를 매우기 시작했
다. TV 에서는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오락프로그램들이 대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쇼프로그램의 사회자 숫자가 늘어나더니 일본처럼 대여섯명이 나란히 서서 온갖 괴성을 질러가면서 방송을 진행하는게 대세가 되었고, 그들이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데도 한글 자막이 친절하게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 땅에도 러브호텔이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처럼 생기기 시작했고 이곳 저곳에 한두개씩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러브호텔 지역이 형성되고 기기묘묘한 서비스로 진화했다. 룸살롬을 대중화시킨 단란주점이란게 전국에 좍 깔리면서 접대부 직업의 창출이 대규모로 이루어졌고 유흥가 길목마다 젊고 예쁜 여자들의 반나 사진이 들어간 명함 크기 광고지가 도배하다시피 되었다. 자살은 너무도 인기있는 생활 패턴이 되어서 자살율이 드디어 세계에서 두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가 되었다. 전국적인 왕따 현상의 유행은 일본의 이지메는 저리가라 할 만큼의 성장세를 보였다. 아침에 방영하는 주부 대상 공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는 결국… 살아있는 생선의 살을 다 바르고 대가리만 남은 생선이 아가미를 움직이며 숨쉬는 장면까지 보게 되었다. 완전 복사판이다. 일본인들의 섹스관광을 욕하던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 되어 허구한날 동남아로 섹스 관광을 떠나는 발전을 하기도 했다. 아예 강간이니 뭐니하는 섹스 범죄까지 범람하다못해 어린 여자아이들까지 성폭행당하거나 심지어는 죽임까지 당한다. 일본을 따라잡자는 것이 경제 측면에서 말하는 것인줄 알았더니 그것만은 아니었나보다. 과연 청출어람이라고 할만한 정도다. 과연 우리가 매일같이 종군위안부 혹은 성노예, 그리고 독도는 우리땅을 외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우리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여전히 일본 탓을 하고 있는가?


맨날 옆나라 흉만 보며 손가락질하면서 정작 내 속내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이렇게 되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문화는 어느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옆집 개 겨묻은 것 흉보며 따라가다가 똥 밟은 개 모습이 된 우리..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암만 생각해도 도대체 대책이 없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