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시간

By | 2011-02-15

내가 캐나다에 와서 가족과 함께 지내기 전에 아들내미는 다운타운에 있는 학교에 갈 때와 올 때 모두 버스를 타고 다녔다. 이제는 내가 아침에 데려다 주고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올 때에만 버스를 탄다. 특별히 얘를 과보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이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아침 시간 일찍 일정한 시간에 routine 한 일을 하려는 의도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으로도 한참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 과정에 있는 아들내미와의 대화의 기회를 가지려는 의도도 함께 있음이다.

며칠 전에는 학교에서 보기 싫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무시하라, 무시하는 방법을 만들어 사용하라’고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얘기했었다. 차를 타고 학교로 가는 길에서는 더 이상 그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지만 이 녀석도 조금은 그 가르침(?)에 대해 곰씹어 보는 것 같았다. 학교 주차장에서 내리면서 하는 말이 “한번 무시해 볼께요”였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다. 최소한 시도는 해보겠지. 다른 날에는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할 때 긴장되어서 좀 고민스럽다고 했을 때는 “그 사람들을 멍멍이로 상상하면서 발표를 시작해보라”고 했었는데 나중에 듣자하니 그 방법을 실제로 학교에서 사용해본 것 같았다. 최종 결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시도 자체가 재미있었다고 한다.

오늘 아침엔 차 안에서 두 번 정도 오늘 있을 일에 대해서 신경 쓰인다고 말하길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일에 대해서, 그리고 고민해봤자 피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미리 고민하면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을까?”라고 말했더니, 아들은 뭔가 깨달은 듯, “정말 그렇네요.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면 완전 시간을 낭비하는게 되겠네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초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는 못하며 살고 있어서 이 아이에게 그런 가르침을 줄 자격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얘가 그에 대해 납득하고 느끼는 바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이래서 나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침마다 아들 녀석을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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