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뒷쪽으로 티샷을 하다니..

By | 2010-06-04

지겨운 겨울이 끝나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이 되면서 드디어 캐나다에서의 두번째 골프시즌을 맞이하여 슬슬 골프 연습장과 골프코스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경제적인 면과 골프 파트너의 부재로 인해 지난주에서야 겨우 네번째 라운딩을 할 수 있었다. 겨울동안 집안에서 빈스윙(!)으로 가다듬은 스윙연습의 결과가 나쁘지 않았는지 점점 샷의 느낌이 좋아지고 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이번 라운딩에서는 제법 좋은 점수를 기대하며 집에서 가까운 골프장을 살펴봤더니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린딘셔 (Llindinshire) 컨트리클럽이 괜찮아보였다. 이제까진 항상 퍼블릭 골프장에만 갔었는데 이곳은 세미 프라이빗이라서 일반 골퍼들도 입장할 수가 있는 곳이다. 바로 전날 저녁에 인터넷으로 8시 티타임 예약을 하고 다음날 아침 라운딩 파트너를 픽업해서 그곳을 찾아갔다.

순수 멤버쉽 골프코스만은 못하겠지만 이제까지 갔던 퍼블릭 골프장보다는 직원들도 훨씬 많고 클럽하우스 시설도 다양한게 눈에 띄었다. 특히나 우리와 다른 한국 사람 팀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 백인 남녀 노인들이 와글거리는 느낌이 다른 곳과는 꽤 달랐다. 하긴, 다른 골프장에서도 절대 다수는 은퇴한 노인들이긴 했다. 접수받고 잔디 깍고 물주고 서빙하는 직원들은 거의 다 20대 젊은이들인 것도 비슷했다.

시간을 배정받고 첫홀에서 티샷을 하는데, 드라이버 감이 좋았다. 첫홀이라 욕심 안부리고 쳤어도 쭉쭉 뻗어나가는 공.. 세컨샷을 하려고 공 치에 갔더니 약 120 야드 남은 것이 내 드라이버로 250야드 정도 온 셈이다. 세컨샷으로 온그린, 그리고 투펏. 그래, 첫홀은 이렇게 가볍게 파로 잡아주고 앞으로 이처럼 해나가기만 하면 되는거다 싶었다.

그러나 첫끝발이 개끝발이라고, 두번째 세번째 홀에서는 드라이버가 자꾸 흔들린다. 보기와 더블보기로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아닌데.. 아침을 못 먹고 와서 정신이 없나싶기도 하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마구 흔들렸다. 그래도 5번홀에서는 간신히 파로 때우면서 6번홀 티박스에 도착했다. 우리 앞에는 처음부터 다른 팀이 보이지 않았고 우리 뒷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고 허기진 배를 참으며 멍한 정신으로 티박스에 올라서서 티펙을 박고 공을 얹고 티샷을 날렸다. 그냥 가운데 직선으로 똑바로 보내겠다는 일념이었다. 공은 제대로 날아갔고 내 파트너는 약간 오른쪽 나무들 있는 곳으로 공이 떨어졌다.

카트를 타고 그쪽으로 이동해 가는데..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드는게 아닌가. 도대체 페어웨이가 나타나지 않는거다. 암만 골프장이 후져도 그렇지 이렇게 페어웨이 잔디 관리를 하지 않으면 되나… 파트너를 그의 공이 떨어졌음직한 근처에 내려주고나서 그린을 찾아 앞으로 쳐다보니 도대체 깃발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정말로… 길을 잃은 것이었다. 골프 라운딩 도중에 길을 잃다…? 파트너더러 공을 찾고 있으라고 당부하고 티샷날렸던 방향으로 카트를 몰아 전진했다. 좌우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는 그린이 보이지 않았지만 오른쪽 나무들 너머에 그린의 깃발이 보였다.  저긴가보다.. 그런데, 왠 나무들이 길을 막고 있는건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다른 홀의 티박스가 있었다. 이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일단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왼쪽의 티박스에 가서 홀 번호를 확인해 보고서야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와 파트너는 티박스에서 그린쪽이 아닌 뒷쪽으로 티샷을 했던 것이었다.!!!!

깜짝 놀라 허겁지겁 카트를 몰고 원래의 티샷 위치로 갔더니 그 다음 팀이 어느새 우릴 따라잡아서 옆 그린에서 퍼팅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노인네가 나보고 궁시렁 궁시렁 훈계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시간을 잡아 먹으면 우리 뒤의 모든 팀들이 다 늦어진다는 둥… 8분 이내에 티샷을 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둥… 다행히도 그 노인네는 우리팀이 거꾸로 티샷을 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Sorry 를 연발하며 나와 파트너는 공을 치는둥 마는둥 하며 정상적인 방향으로 질주를 해댔다. 오직 뒷팀을 다시 멀리 멀리 떨구겠다는 일념으로….

다행히도 후반 9개 에서는 비상식량과 물로 기력을 회복하고 내 티샷의 문제점을 해결해서 그럭저럭 파와 보기로 (버디는 없이..) 해나갈 수 있었지만,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도 파트너와 나는 쓴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암만 캐디도 없고 다른 팀들도 전혀 없은 상태에서 방향성을 잃어버려도 그렇지, 두명 모두 그런 실수를 함께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가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해서였다. 구지 변명을 하자면 티박스에서 경계석(?)의 위치가 조금 이상하게 놓여있던 것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즉 아래 그림같이 생긴 티박스에서 사실은 두 경계석의 아랫부분이 티박스였는데, 우리는 정신없는 상태에서 당연히(!!!)윗쪽의 넓은 부분이 티박스이고 따라서 아랫쪽을 향해 티샷을 날렸어야 하는걸로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리 많은 골프 라운딩을 한 것도 아닌데 이런 멍청한 난리를 피우다니.. 완전 ‘덤 앤 더머’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또 재미있는 라운딩이었다. 후반에는 꽤나 알차게 공을 쳤던 것도 좋았다. 실력이 안 따라줘서 이글도 한번 못해봤지만 이렇게 못난 짓으로도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또 어딜까.. 두달 뒤에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좀 더 열심히 라운딩해서 더 좋은 기억을 만들어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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