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남는건 무엇일까..

By | 2010-06-02

사람들이 흔히 “사는게 뭐 별거있나”라고 말하곤 한다.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가는 인생인데 뭐 그리 고민하며 낑낑대며 살아가는가, 되도록이면 맘편하게 즐겁게 살자는 의미로 이해된다. 꼭 그런 식으로는 아니지만 나도 그런 쪽에서 멀진 않은 생활방식이 아닌가 싶다. 물론 워낙에 생각이 많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그런 생활이 전혀 가능하진 않지만 최소한 추구하는 바는 그런 쪽을 많이 바라보는 편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라던가 “현재에 충실하자”라는 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을게다.

나는 아무튼 너무 먼 미래의 일 때문에 현재의 삶에서 많은 희생을 하거나 고민을 하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 미래의 날에도 내가 여전히 이렇게 숨쉬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어서이다. 어지간히 확실하게 정해져있는 미래가 아니라면 도대체 뭘 바라고 그때를 준비해야하는 것일까. 10년후 세계 일주 여행을 가겠다고 밤낮없이 일하며 돈을 모우고 난 뒤에 정작 그때가 되어서 병든 몸이 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 가서 더 이상 여행이란 것에 관심이 없어지면 또 어떻게 될까? 아예 생존하지 않는 상태라면..? 그 미래를 바라고 준비하는 것은 좋지만 어느 정도의 타협을 통해서 적당한 수준에서 하고싶은 것이 내 생각이다. 마치 사후의 천국행을 바라며 고행하며 살기보다는 현실에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고 죽은 뒤에 대해선 그때 가서 해결해 보자는 생각이다. 먼 훗날 남는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이 되리라 기대하면서.

며칠전에 집 근처의 보험 에이전트 사무실에 다녀온 아내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우리에게 자동차 보험을 팔기도 했지만 몇달뒤면 은퇴한다며 그때가 되면 아내의 차만 쓸 것이라며 자신의 차를 사라고 권유했던 짐영 씨가 은퇴하고 몇달만에 갑자기 암으로 운명했다는 것이다. 워낙 급작스럽게 발견된 암이 손쓸새 없이 퍼졌다고 한다. 북미인들의 전형적인 생활 스타일이 그러하듯이 그도 은퇴후에 경제적 여유를 즐기며 행복한 노후를 계획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은퇴하자마자 그렇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은 막 아장거리기 시작하는 한살짜리 어린아기에게나 은퇴를 앞둔 노인에게나 다 마찬가지이다. 단지 확률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의 죽음을 전해듣고 나서 느낀 점은? 처음엔 내 생각이 맞다고 실감했다. 그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에서 최대한 현재의 즐거움을 만들자는 것이다. 돈많이 벌어서 나중에 은퇴하면 펑펑쓰며 잘 살자고 계획해서 일해봤자 이번 경우처럼 되면 그게 무슨 소용이려나. 그런데 문득 떠오른 것은 ‘진짜 남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었다. 젊어선 꿈을 먹고 살고 늙어선 젊은 시절의 즐겁던 기억, 아름다운 추억을 먹고 산다고도 하지만.. 그런 기억이 무자비하게 퇴색되어 버리면 어떻게 되는걸까? 아무리 예전의 느낌을 되새겨봐도 물리적인 기억과 이미지는 머리속에 떠오르지만 그 느낌에 대해선 무덤덤해 버리면 그게 또 무슨 소용일까? 옛날 생각만 하면서 “나도 한때는…” 이라고 말을 꺼내자면 그게 즐거워지기는 하는걸까? 오히려 지나가버린 시간과 어디론지 모를 곳으로 가버린 느낌들 때문에 더 서러워지는 것이나 아닐까?

오늘 갑자기, 오랫동안 내가 믿어왔던 낭만적인 경향의 믿음이 흔들렸다. 기억과 느낌 같은 무형의 것들, 특히나 내 머리 속의 뇌세포의 기능과 용량에만 의존하는 것들이 내가 원하는 만큼 그렇게 유지되지는 않는다.  기억보다는 오히려 사진이 나을게다. 관광지에 가서 ‘역시 남는건 사진밖에 없어’라고 마구 사진을 찍어대던 사람들을 혀를 차며 바라보곤 했는데, 오히려 그게 정말 진리일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진은 분명히 수십년뒤에까지 남아있을 터이고 내 기억이 흐려지고 완전히 잊어도 그건 사실을 보여준다. ‘돈돈돈 하며 미친듯 일하며 살아도 나중에 죽을 때 저 세상에 싸가져갈 수도 없는거야’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시시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시선의 주인공이 죽으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돈벌기에 미쳤던 사람들은 현금이건 금이건 부동산이건 확실히 남는 것들이 있다. 물론 죽고 떠난 당사자에겐 전혀 의미없는 일이지만 이 현실세계에선 그렇다.

내가 지녀왔던 생각에 대해 옳다 그르다라고 판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람들이 사는 방법에는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고 또 그것들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각성을 하게 된 것이다. 먼 훗날, 혹은 당장 1년 뒤에라도 우리에게 남는 것들은 어떤 것일지 알 수 없다. 이성적인 판단력이건 아름다운 추억이건 즐거운 기억이건, 혹은 적지 않은 재산이건 마구 찍어대던 사진이건, 그 모든 것이 서로 다른 개개인들에게 나름대로 가치있는 것일 수 있겠다. 정작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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