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려면 멀었고 유치원 다니는 작은아이는 이미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은 상태에서 우리 세식구만 영화를 보러 가까운 몰에 있는 극장을 향했다. 매주 화요일은 평소의 50% 할인된 가격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화요일엔 자주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 오늘은 새로 개봉한 “Alice in Wonderland”를 3D로 보기로 했다. 나이어린 우리애까지 포함해서 가족들이 다함께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극장안에 들어서니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고 이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에는 관객이 객석의 20%쯤 밖에는 차지 않아서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윽고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10분도 안 되어 화면이 사라져버렸다. 역시 이 나라 사람들은 맘이 좋아서인지, 참을성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특별히 소리를 낸다고해서 뭐 달라질게 없을거라는 것을 잘 알아서인지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약 1분쯤 뒤에 다시 스크린 위에 영화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게 다시 5분쯤 상영되다 또 화면이 사라졌다. 30초쯤 뒤에 다시 켜지고 또 5분쯤 뒤에 다시 꺼지고.. 슬슬 자리를 떠서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겼다. 물론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서였다. 그냥 Shit Just Happens~ 라는 생각으로 표 환불 받아가려는 사람들일게다. 우리 부부도 좀 짜증나기 시작해서 나가곤 싶었는데 작은아이가 계속 보고싶다고 해서 일단 좀 더 앉아 있었는데 이렇게 꺼졌다 켜지는 일이 5번도 넘게 벌어지는게 아닌가…
결국 극장 전체의 불이 켜졌고 난 이때 영화 상영을 중단하려는 것인걸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와서 큰 소리로 사과를 하면서, 디지털 상영기를 다시 부팅시키고 있으며 사죄하는 의미에서 여러분 모두가 나갈 때 일인당 2장씩의 무료 관람 티켓을 주겠다고 말했다. 흠… 그렇다면 부팅이 다시 될 때까지 기다려볼까. 하지만 나의 엔지니어로서의 견지에서 볼 때 전자장치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꺼졌다 켜졌다를 거듭하게 되면 다시 부팅해서 고쳐질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남는게 시간이니 일단 한번 기다려보기로 했다.
잠시 뒤에 다시 불이 꺼지고 화면에는 아까 멈췄던 장면부터 다시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5분도 안되어 또 다시 앞서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고 또 잠시 뒤에 다시 화면이 들어왔다. 우리 부부는 그 뒤에 다시 한번 화면이 사라졌을 때 계속 보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출구에서는 극장 직원이 손짓으로 내부 매표소로 가릭키며 그쪽으로 가라고 알려줬고 그곳에서는 다시 미안하다고 말하며 아까 약속한 대로 6장의 무료 티켓을 주었다. 영화를 보기로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웠냐고? 아니다 어차피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영사기에 문제가 없었다고 해도 제대로 몰입이 어려웠기 때문에 오히려 반가웠다. 영화 속의 영어 대사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아서 더욱 그랬고 게다가 공짜로 영화 한편씩으로 추가로 더 볼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아무때나, 어떤 가격의 영화던지, 조건없이 볼 수 있는 영화표가 생겼으니 관람료가 비싼 휴일날 가족이 다 함께 좋은 영화를 골라서 갈 수 있게 되어서 난 오히려 마음이 흡족했다. 이 “Alice in Wonderland”는 나중에 비디오로 보기로 하고 오늘 예고에편서 골라놓은 액션영화나 봐야겠다.
영화관에서 갑자기 화면이 사라졌을 때 관객들의 반응은 그 나라의 상황에 맞게, 문화에 맞게, 대다수의 성격에 맞게 나타는 것 같다. 여기선 아무도 큰 소리를 치지 않았고 대부분 자리를 뜨지도 않았고 또 극장 쪽에서도 충분히 그 피해본 것보다 더 많은 보상을 해주는 것이 당연한 절차처럼 진행되었다. 큰소리 치면 이상한 일이고 또 극장에서 입 딱 씻고는 “미안하다, 하지만 고장난걸 어쩌냐 그냥 참아라”고 하거나 표1장어차만 환불해주겠다고 하면 또 말도 안되는 일이 될 것같다. 한국에서는 한번 화면이 사라지면 좀 와글와글하다가 두번째쯤 되면 개중에 가장 성질 급한 사람들이 큰소리칠 것이고 5번도 채 되기 전에 대부분 나가버릴 것이다. 그런 차이를 두고 어느 나라가 좋다, 나쁘다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다른 문화일 뿐이다. 서로 다른 프로토콜로 일이 진행되고 처리가 될 것이다. 여기서 가만히 5번 이상 영사기가 꺼지는 상황에서도 쓴 웃음을 지은채 조용히 앉아있던 나도 한국에서였다면 3번째 꺼지면 “에이씨!”라고 큰소리 쳤을것이다. 문화와 상황과 성격들이 다를 뿐이다. 한국에선 여기처럼 사람들이 가만이 있는것도 이상한 일로 보였을터이고, 중간에 나간 사람들에게까지 1인당 2장씩 자유이용권을 준다고해도 뉴스거리가 될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곳 캐나다는 한국과는 그냥 다른 곳, 다른 사람들, 다른 관습이 있는 나라일 뿐이다.
한국도 대형 멀티플렉스가 자리잡아서 그런지
영사기 고장이 일어나면 보상차원에서 환불+공짜표 주는건 거의 관례화가 됬지요
뉴스거리?가 될만큼 공짜표가 엄청 대단한 이벤트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