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r Management

By | 200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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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성질 죽이기’라고 할까 아니면 문자 그대로 ‘분노 관리’라고 불러야할까. 최근 몇년 전에 나온 영화 제목으로 사용되었으니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올만한 표현이겠다. 보통은 이런 행동을 가리켜 화를 참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 화를 삭인다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어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또는 상황에 대해서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꾹 참고 그걸 밖으로 표출시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화’를 다스린다는 표현은 그와 관련된 내용의 책 제목으로 쓰이기도 한걸 볼 수 있었다. 이걸 보면 위의 Anger Management 는 우리말로 ‘화 다스리기’로 표현하는게 가장 적합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나는 ‘화’를 다스린다는 것에 대해서는 옳게 표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니 ‘화’의 표현 방법 이전에 이미 화가 나 있다는 상태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내가 보는 ‘화’는 일종의 에너지 같은 무형의 존재다. 일단 머리 속에서나 가슴 속에 발생한 ‘화’는 에너지라고 봐야한다. 그러면 여기서도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같은 것이 존재하는데 그 분노감을 언어로 또는 행동으로 완전히 분출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 사람의 정신과 육체 속에서 머물러 있거나 다른 형태의 작용을 하게 된다. 그게 바로 내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행동이 되어 정신질환 내지는 신체의 질병으로 변환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화’는 어떻게든 분출되어야 하고 해소되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것이 폭력적인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진 못하므로 다른 방법을 찾아야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거나 운동을 하고 성생활에 탐닉하건 또는 갖가지 취미생활을 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그 감정을 다스리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가 일단 발생하면 아무리 그걸 잘 해소한다고 해도 적지 않은 해악이 뒤따르게 된다. 그래서 그것의 문제를 없앨 수 있는 훨씬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한다. 바로 Anger Management 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을 아예 막아버리는 것이다. 즉 추스려야할 ‘화’라는 에너지의 발생을 원천적인 단계에서 방지하는 방법이다. 내 경우에 그 차이를 명확히 느낄 수 있는 예를 내 운전습관에서 볼 수 있다. 10 여년전의 내 자동차 운전 모습을 머리속에 떠올려 보면 대체로 차분한 편이지만 적지 않은 경우에 분노를 느끼곤 했었다. 다른 자동차가 너무 위험하게 내 앞으로 끼어들어오던지, 거의 사고가 날 정도로 급정거를 하거나 신호를 위반하면서 나를 사고날 뻔하게 만들고 또 다른 차들의 통행을 심하게 방해하는 등의 상황을 일으킬 때면 나는 분노하곤 했고 차에서 내려 거세게 항의하는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었다. 물론 그런 행동으로 내가 직접적으로 얻는 것은 없고 오히려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더 화가 치밀어 오르던지 더 위험한 운전에 이르거나 마음의 앙금을 남기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내 운전은 그때와는 크게 달라졌다. 완벽에 가까운 평온한 수준은 아니지만 누가 끼어들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경우에도, 짜증날 만큼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차와 조우해도 난 최대한 그런 현상들이 그저 내 몸에 불어오는 바람인 것처럼 간주하고 그저 무심(無心)한 자세로 내 갈 길을 가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그런 운전 방식이 내 몸에 습관처럼 붙은 상태가 되었다. 사실, 운전할 때가 이런 무심한 자세를 갖기에는 가장 쉬운 상황이긴 하다. 내 몸이 자동차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 있으므로 주변의 다른 차들에 대해서는 그저 3 인칭의 사물일 뿐이라고 치부하기 쉬운 편이라서다. 이게 내가 맨몸으로 있으면서 내 주변의 다른 사람과 마주치게 될 때는 좀 더 어려워진다. 나랑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크게 어렵진 않겠지만 만약 함께 일하거나 업무상 관련이 있고 또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면 점점 그런 3인칭 시점의 설정이 쉽지 않아진다. 나중에 가족관계나 남녀관계에까지 올라간다면 그때는 무심(無心)한 자세의 설정과 유지는 정말로 어려워진다.

내가 최근 며칠동안 적지 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이 바로 그런 가족 관계에서의 무심한 자세를 잃었기 때문인 것 같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3인칭적인 관조하는 자세를 가지고 정신건강적 문제가 있는 부모님을 대해왔던 것 같은데 얼마전부터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일을 맡았고 그것으로 인해 좀 바빠지면서 내 마음 자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심에서 이탈했던 것 같았다. 본래의 내 기질은 일단 그런 불같은 ‘화’의 에너지가 발생되면 겉으로는 잘 표출되진 않지만 육체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는데 그때문인지 지난 며칠간의 내 몸은 상당히 피곤하고 안 좋은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난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화가 치밀면서도 그걸 표출하지 않는 나에 대해서 ‘난 여전히 잘 처신하고 있다’고만 여기고 있었는데 사실 그런 분노 에너지가 생겨선 안됐던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 그걸 깨달을 수 있어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상당히 몸과 마음이 안정되기는 했는데 계속 망각하거나 중심을 잊곤하는게 인간의 본모습인지라 언제 또 정상궤도에서 이탈할까 미리 염려되는 마음도 있다.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처럼 매일아침 일어나서 기도나 참선을 하기라도 해야하나싶다. 나만의 방법을 정해서 매일같이 마음자세를 추스리는 생활 패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가령, 요즘의 내 생활패턴은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그 앞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되어 버렸는데 그것부터 바꿔야할 것 같기도 하다. 최대한 겸허하고 차분하게 내 중심을 유지해 냐갈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서 평생 유지해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게 오늘 Anger Management 에 대해 생각하며 배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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