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명절과 고향은 무엇인가

By | 2009-10-04

TV를 통해 보이는 고속도로 상의 수많은 차량들, 아나운서는 그들이 고향을 그리며 몇시간이 걸릴지라도 고향에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저렇게 모여들고 있다고 계속 떠든다. 설날이면 설날, 추석이면 추석, 그들에겐 그런 날들이 그리운 고향에 간다는 특별한 날들인가보다. 하지만 내 삐딱한 머리 속에서는 당연히 삐딱한 생각을 한다. 그들은 추석이나 설날이 아니면 고향이라는 곳에 전혀 가지를 않는 것일까. 평소에 못 가본, 너무 멀고 바빠서 갈 수 없었던 곳을 모처럼 방문할 수 있는 기회라서 저렇게 기를 쓰고 몰려드는 것일까. 요즘처럼 도로망이 잘 되어 있는대도 그런건가. 과연 그들이 가고 있는 그곳이 고향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곳이고, 그들이 그곳을 향하고 있는 이유도 그런 것일까. 그들은 다들 그곳에 가서 그만큼 행복하고 다녀온 뒤에도 기분 좋은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하긴 남들이 가고 싶어 간다는데 내가 시비 걸 일이 뭐 있을까. 이 모든 잡스러운 생각들은 모두 다 명절이나 고향 같은 것과 별 교감을 가지지 못하는 내 유별남에 있다.

나에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도 아니었고, 봉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도 머리에 들어있지 않다. 그저 어린 시절에 내가 어느 고장에 살았다는 지명으로 밖에는 머리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전이 시골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살기 시작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떠났던 그곳을, 그 뒤로 몇년 뒤에 방문했을 때에도 내 감정은 포근함이나 친근함보다는 오히려 의외의 낯설움이었다. 이후에도 그 시점에 당장 살고 있는 곳이 아니면 낯을 가리게 되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지금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면서 가장 머리에 자주 떠오르고 다시 가고 싶어지는 곳은 작년말까지 1년 조금 넘게 살았을 뿐인 태국의 어느 지역이다. 그곳에서의 즐거웠던 생활의 영상들이 마치 고향에서 지냈던 일들이었던 것처럼 떠오른다. 한국에서의 명절의 기억들은 추억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평범하고 지극히 개인적이기만 한 기억들 뿐이다. 사람들은 이런 내 생각을 들으면 웃기는 인간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즐겁지 않는 기억들도 추억이라고 우기거나 강요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같다.

명절의 추억도 나에겐 없다. 명절이라는 것이 나에게 불어넣는 의미도 거의 없고 어떤 식의 가치부여도 내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 허상일 뿐이다. 내 머리속에는 명절과 관련된 특별한 행사에 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보다는 평이한 일상에서의 소소한 기억들이 오히려 더 좋은 느낌으로 많이 떠오른다. 나에게 명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날은, 이미 특별한 날이라고 규정되어 있는  추석이나 설날 같은 것들이 아닌, 나 자신에게 특별하다는 느낌을 안겨주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를 가진 날들이다. 명절의 의미는, 어릴 적에는 많은 음식과 과일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해준 것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마음껏 먹고픈 것을 먹을만큼 내 몫이 주어지진 않았다. 아예 손도 대지 못하게 하는 비싼 음식도 몇가지 있었고 알록달록 색깔이 들어간 과자를 몇개 먹다보면 금새 차례상이 치워져있었다. 차례상을 물린 뒤에 우리 몫으로 주어진 음식을 가지고 집에 가도 며칠을 두고 아껴가며 먹어야한다는 어머니의 정책 때문에 불만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다행이 약간의 즐거움이 있던 시기는 있었다. 차례상이나 제사상에서 기억나는 것은 평소에는 못 먹던 닭다리를 동생과 각각 한개씩 손에 쥐고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나중에 나이가 먹으면서는 제사 음식들을 별로 즐기지 않게되어 더욱 명절음식과는 인연이 멀어졌다.

성년이 되고 가정을 갖게 된 이후의 명절에 대한 기억은 어쩔 수 없는 의무감에 차를 몰고 길에 나서야 했던 힘겨움과 차례와 성묘길에서의 힘겨웠던 기억만 떠오른다. 그런 행사가 있을 때 어느 곳에서 내 자리를 찾아야 할지, 어떤 일을 내몫으로 삼아 해야할지 몰라서 엉거추춤 헤매곤 하는 내모습이 명절이라는 단어와 겹쳐보인다. 난 그런 행사에서도 항상 아웃사이더일 수 밖에 없었다. 제사를 지낼 때에도 조부모 제사인지 증조부모 제사인지도 모르면서 옆에 있는 아버지나 친척들 눈치를 봐 가면서 아무 생각없이 절을 하곤 했다. 차례상과 지방을 향해 몇 차례의 두배반 절을 해야하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이만큼 나이가 들어도 도저히 내 머리 속에는 제사에 대해, 차례에 대해 별로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지 않는다. 그처럼 수동적이기만 했던 행사가 명절이었다. 이제 외국으로 떠돌며 살기 시작한지 꽤 된 뒤라서 제사나 차례 같은 행사에 참여해 본지 몇년이 되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은 물론 없지만, 그렇다고해서 안도감이 드는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그쪽으론 아무런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의 한국에서의 명절은 축제 성격도 아니었고 친척들끼리 모여서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가족애를 고양시키는 그런 날도 아니었다. 아주 이상적인 어떤 가정이 있다면 그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좋은 이벤트 성격을 가진 날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는 명절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을 위할 뿐이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멋 옛날엔 또 모르겠다. 진짜 유교라고 할 수도 없는 이상하게 뒤틀린 풍습을 만들어 놓고 무작정 따르라고 억지를 부리는 그저 형식으로만 남아있는 껍데기 명절도 그 옛날엔 감격스런 축제같은 것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명절은 별로 그런 즐거움을 의미하는 날은 아닌 것 같다. 고향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진행형 국지성 정체감을 가진 나로서는 지금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이 될 것이고,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날이 명절이 될 것이다. 나에게는 문화와 관습이 가지는 관성의 법칙이 그리 강하게 작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결국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서 살면서도 계속 낯을 가리며 살 수 밖에 없었던 유년기의 기억은 여기서도 나를 문화와 관습 밖의 비주류로 밀어내고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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