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메일이 앞서는 시대

By | 2003-04-10

상황 1
어느 날 밤에 있었던 일이다. 낮에 있었던 개발 엔지니어들과의 디자인 미팅 내용을 정리해 미국 본사의 엔지니어에게 통보한 시각이 밤 11쯤이었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와의 시차 때문에 항상 밤 12시가 되기 전까지는 그날의 프로젝트 진행 결과를 보내줘야 했기 때문에 집으로 퇴근해서도 야간작업을 하는 게 일상적인 일이었다.

자정쯤 되어 잠자리에 들기 전에 메일을 확인해 보니 앞서 보낸 내용에 대한 답장이 미국으로부터 도착해 있었다. 혹시나 해서 내용을 읽어보니, 한국팀이 미팅 결과 내린 결론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제품 스펙을 정해버린 것이 아닌가. 그쪽에서 뭔가 잘못 이해했구나 싶어 짧게 부연 설명을 덧붙여 답장을 보냈다.

그 뒤로 몇 분 안되어 그에 대한 답장이 또 왔는데 이번에는 더 말도 안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때부터 열받기 시작한 필자는 계속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고 상대방도 맞대응 하는 소위 ‘메일 핑퐁’을 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전화기에 대고 영어로 떠들자면 본토배기에게 말싸움에서 이기기 힘들 것 같아서 필자로서는 메일로 공격하는 수밖에 없었고 아마 그 쪽에서도 나같은 껄끄러운 사람에게 육성 통화를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로 감정이 팍팍 섞인 메일을 엄청나게 주고 받다 보니 어느새 시계 바늘은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결국 쌓인 피로와 체력에서 밀린 필자가 응답을 포기하고 잠자리에 들고 말았다.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있었으므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 다음날이 되어 서로간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업무가 진행됐고 cc: 난에 주소가 들어있었던 다른 많은 관련자들에게서도 아무런 코멘트도 중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없었다. 마치 그런 일이 흔하디 흔한 것이 돼버린 것처럼.

불행히도 그 일이 있은후 며칠 뒤 미국 본사의 사람들끼리 메일 핑퐁을 치는 일을 또 목격하게 되었다. 단지 필자의 메일 주소가 cc: 에 들어있었던 이유만으로 그랬다. 그리고 필자도 별 생각없이 그 사건을 지나쳤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말이다.

상황 2
위에 쓴 해프닝이 있던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이곳 또한 어느 미국 회사의 한국 지사였기 때문에 공식적인 업무 메일은 영어로만 작성되도록 규정되었기 때문에 업무 기록으로 남아야 하는 내용의 경우에는 한국 사원들 사이에서도 영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필자와 필자의 상사의 자리는 실제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였다. 하지만 두 테이블 사이를 1.5m 높이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한쪽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자리에 있는지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주변이 아주 조용한 경우에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를 통해 간혹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긴 했다.

어느 날 필자가 처리한 업무에 대해 메일로 보고를 했는데 한 시간쯤 뒤에 그 상사로부터 답장이 도착했다. 내용인즉, 필자가 그 사안을 처리한 방식이 매우 실망스럽다는 것이었다. 원래부터 필자와 상사와는 다소 썰렁한 관계여서 육성 대화가 별로 없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더더욱 차가운 인식의 괴리가 느껴졌다.

잠시 생각한 끝에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는 다시 몇 번의 답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고 갔다. 메일의 제목에는 Re: 가 계속 추가되어 나중엔 원래의 제목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서로 의자에서 일어나 한국말로 대화를 했다면 오해가 없었을 수도 있고, 낑낑거리며 외국어로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도저히 그런 경제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했다. 서로가 얼굴 보고 얘기하기를 회피했기 때문인데 그걸 도와준 메일에 감사를 해야 할까. 아니면 서로의 관계를 호전시켰을 지도 모르는 인간 대 인간끼리의 직접적인 대화를 막았다고 비난해야 할까.

그 때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한국어로 메일을 쓰는 경우에도 또 위에서와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사무실은 아니었지만 같은 한국땅에서였다. 그래도 끝끝내 메일을 고수했다. 원래 그렇게 일해왔던 것처럼. 그리고 이제 그런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상황 3
여러 해 전, 연애시절 얘기다. 지금은 아내가 된 그녀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야 될 상황이 되어 한동안 메일로 이런 저런 소식을 주고 받곤 했다. 온라인 채팅도 많이 했다. 전화료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서로간에 할 말이 많았겠는가.

그런데 메일이라는 것이 실제 생활의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지는 못했다. 어느 날 읽어본 메일의 내용에 괜히 고민하고 화가 치밀어 그 감정을 약간 실어 답장을 보내면 메일이라는 도구는 마치 그걸 더 확대 해석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서로 폭발하고, 그러고 나서야 전화를 들어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얘기를 했고 그제서야 서로간의 사안에 대해, 그리고 상대방의 원래 의도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것 때문에 매번 몇 시간씩 전화를 해야 했고, 결국 몇 달 떨어져있는 동안 부과된 국제전화료가 100만원을 넘어서는 바람에 아예 애초부터 전화 통화를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들여야 했다.

이제 업무에서나 개인 생활에서나 필수 수단이 돼버린 메일에 대해 딴지를 걸어봤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진 못할 것이다. 필자가 지금 작성하고 있는 이 원고도 메일을 통해 편집부에 송고될 것이고, 그에 대한 피드백도 메일로 받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연락하라며 전화번호와 함께 메일주소를 줄 것이고 현재 사용중인 휴대폰의 요금 고지서도 일반우편이 아닌 메일로만 송부되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메일 때문에 자꾸 왜곡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반성하곤 한다.

어떤 면에서는 얼굴 보기 싫은 사람과 일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고 볼 수도 있지만 친해질 기회를 아예 몰수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도 싶다. 벨이 울리면 그때 바로 받게 되는 전화와는 달리 메일은 메일박스에 모아놓았다가 한꺼번에 처리하면 되므로 효율이 높아진다고 생각도 하지만, 꺼리는 이로부터의 메일이나 힘들게 처리해야 하는 내용의 메일이 있다면 하염없이 메일박스에 저장해 놓기도 한다. 그러다가 시기를 놓쳐버리는 일도 드물지 않게 있다.

예전엔 말보다 주먹이 앞섰다는 말이 있었다. 요즘 보면 많은 경우 말보다 메일이 앞서는 경향이 있다. 어떤 쪽이 더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메일에 의존하다 보니 종국에는 메일에 지배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효율성만 따질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유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보면 메일을 사용하는 게 항상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위에서 보인 사례를 회상해가며 필자도 반성중이다. “그때 서로 직접 대화를 했었어야 하는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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