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까지는 멀쩡히 잘 작동하던 마우스가 갑자기 비실거리기 시작한다. 대만의 어느 회사에서 만든 광마우스인데 겉에 붙어있는 지니어스(Genius) 상표가 제법 알려진 제품이다. 마우스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밀고 당겨봐도 모니터 속의 포인터는 움직이질 않는다.
이상하다 싶어 키보드를 두드리면 그건 또 제대로 동작을 하고 있다. 마우스를 뒤집어 배꼽 근처를 살펴보니 마땅히 켜있어야 할 붉은색 발광다이오드(LED)가 꺼져있다. 왠일인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고휘도 LED가 켜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눈의 망막을 자극한 그 강력한 빛은 한참동안 지속되는 잔상을 만들어 버렸다. 눈 버리겠다 싶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경우에 자칭 타칭 공돌이라고 하는 우리 엔지니어들이 흔히 하는 일이 동작하지 않는 물건을 뜯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뜯어볼 대상이 생겨서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 고쳐진다면 엔지니어로서의 우쭐할 수 있게 되어서일 것이다.
이것 바로 이전에 쓰던 마우스는 마이크로소프트 상표가 붙은 것이었는데 볼트를 찾을 수 없어서 고장이 났을 때도 뜯어보질 못했다. 플라스틱 껍데기끼리 결합시키면서 조여지는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고장난 마우스는 볼트 하나만 풀어주면 그대로 몸체가 분해가 됐다. 하지만 뜯어서 살펴봐도 선이 반쯤 끊어져서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곳은 없었다.
워낙 부품도 몇 개 되지 않으니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는 식으로 저절로 고쳐지는 요행은 바라기 어렵게 생겼다. 광마우스가 아니었다면 볼과 센서같은 부품이 더 있어서 살펴볼 여지가 많았겠지만 이 광 마우스는 시간낭비를 하지 않게 해 주었다. 새로 구입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를 테면 워드스타(Wordstar)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성공적인 워드프로세서로는 거의 최초의 소프트웨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워드스타였는데, 마우스가 일반 대중에게 채 알려지지도 않았던 20년쯤 전에 많이 사용되던 워드스타에서는 문장 편집을 위해 CTRL키와 함께 다른 문자키를 누르는 조합을 많이 이용하도록 돼있었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이 [Ctrl+S]는 커서를 왼쪽으로 한글자씩 이동, [Ctrl+D]는 오른쪽으로 한글자씩 이동, [Ctrl+A]는 왼쪽으로 커서를 한 단어씩 이동, 그리고 [Ctrl+F]는 오른쪽으로 한 단어 단위로 커서를 이동시키는 기능이었다. 이들 키와 함께 대다수의 편집키들이 키보드 왼쪽에 있는 문자들을 이용하도록 돼있었다.
컴퓨터를 처음 사용했던 시절에 워드스타에 워낙 익숙해지다 보니 그후로도 커서(윈도우 시대에는 캐럿 혹은 포인터라고 부르지만)를 이동하는 것 뿐 아니라 기타 다른 기능에도 키보드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 때문에 요즘 윈도우 운영체제에서도 키보드를 꽤 많이 이용하고 있는 상태인데, 덕분에 마우스없이도 어지간한 작업은 어지간히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마우스가 고장나서 오락가락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처럼 주로 키보드만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휴식 때면 습관적으로 몇 판씩 하곤 하는 한게임의 고스톱을 하려다 보니 마우스 없이는 전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정작 일 때문이 아니라 오락을 위해 마우스를 새로 구입할 필요가 긴급히 생긴 것이다.
문득 생각난 것인데, 필자가 사용한 최초의 마우스도 지니어스 상표였다. 그 당시 청계천에서 거금 8만원을 주고 꿈에 그리던 마우스를 구입했던 것인데, 약 15년 전의 8만원은 상당히 부담스런 액수였지만 집에서 전자회로 CAD 소프트웨어를 구동해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려던 상황인지라 마우스는 필수였다.
그 마우스도 한때 고장난 걸로 오인했던 때가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요즘엔 흔한 이중창이나 복층 유리도 없이 창호지로 바른 방문과 창문이 달리고 벽돌로 쌓은 구옥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방안이 추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아침 일찍, 그리고 저녁 늦게 매일같이 손을 호호 불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새벽에 갑자기 마우스가 동작을 멈춰버렸다. 그땐 정말 고장이 난 줄 알았다. 비싼 돈 주고 산 물건이기도 했지만 우선 당장 할 일이 쌓여있고 또 주말이 되기 전에는 마우스를 수리하거나 새로 구입하러 갈 시간이 없어서 큰 문제였다.
그때도 마우스를 뜯어보긴 했었다. 물론 전혀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케이블을 살피고 커넥터를 살피고 컴퓨터를 몇번씩 껐다 켜보기도 했지만 마우스는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정을 내리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정상 동작 온도(Operating Temperature)였다. 모든 전자제품에는 보관온도(Storage Temperature)가 있고 정상 동작 온도라는 게 정해져 있다. 일반적으로는 거의 신경쓰지 않고 사용하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사용하는 HP 레이저 프린터의 사용자 설명서를 보면 정상 동작 온도는 섭씨 영상 15도에서 32.5도로 적혀있다. 그 온도 범위 바깥에서는 결코 정상적인 동작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른 예로 IBM 노트북 매뉴얼을 보니 거기엔 섭씨 10도에서 35까지의 범위로 되어 있다. 아무튼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필자는 마우스를 입고 있던 옷 속에 집어놓고 온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그저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잠시 후 옷 속에서 나온 마우스는 마치 겨울잠을 깬 듯 정상적인 동작을 하는 게 아닌가.
그 때부터 추운 겨울이 지날 때까지 필자의 방에 있던 컴퓨터 모니터 옆에는 장비가 하나 더 늘었다. 헤어드라이어를 준비해 놓고 마우스가 동작을 멈출 때마다 헤어드라이어로 가열하며 잠을 깨워가며 작업을 했던 것이다. 추위로 손은 굽어서 키보드를 제대로 치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그 마우스는 작업기간 동안에나마 따뜻한 겨울을 보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폐기처분된지 오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제까지 사용해 온 마우스가 꽤 여럿 된다. 줄잡아 10개는 넘는 듯하다. 키보드처럼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하드디스크처럼 그 안에서 모터가 고속회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은근히 필자가 사용해 온 마우스들은 고장이 잘 났다. 본체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서인지 수리할 생각도 안하고 대부분 문제가 생기자마자 한 번 뜯어보고는 새 것으로 바꿔 달아왔다.
이번의 광마우스는 싼 맛에, 그리고 구동부가 없기 때문에 고장이 거의 없다고 해서 사용했는데 결과는 별로 안좋다. 값싼 제품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지방의 본가에서 필자의 아버지가 사용하시는 컴퓨터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광마우스가 달려있지만 아버지는 예전의 싸구려 볼마우스가 훨씬 사용하기 좋다고 불평하신다. 광마우스가 빠른 움직임에는 다소 취약하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아마 그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필자가 광 마우스 이전에 사용하던 것은 로지텍의 미니 볼 마우스인데 그것이 필자의 마우스 편력 15년 동안 가장 높은 만족도를 나타낸 제품이다. 지금은 아들내미의 컴퓨터와 아내의 노트북에 각각 하나씩 붙어있다. 오늘은 틈을 내서 서울에 나가 마우스를 새로 구입해야겠다.
뭔가 새로운 종류의 마우스가 나와있겠지만 작년이나 지금이나 별 다름이 없을 것이다. 예전에 없던 광마우스가 개발됐고, 또 가격이 만원 이하선에서 시작한다는 정도가 큰 차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컴퓨터 생활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 된 마우스. 단돈 몇천원에도 그 기능을 살 수 있음을 생각하면 쇼핑이 그렇게 부담스럽진 않다. 오늘은 마우스 한 마리 장만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