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란을 겪고 보니

By | 2003-01-30

서울에 살던 시절 가끔씩 겪곤했던 것중에는 교통대란이 있었다. 도로 한 복판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울분만 삭이는 그런 상황이다. 이걸 미국 사람들은 그리드락(Gridlock)이라고 하나 본데, 소싯적에 학교에서 운영체제 시간에 배운 용어는 데드락(Deadlock)이었다.

운영체제의 프로세스들이 서로 엉켜서 마침내 컴퓨터가 멈춰버릴 때 쓰는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리드락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아직껏 그 단어가 뇌리에 남아있는 것 같다. 필자가 교통대란의 한가운데서 느꼈던 것은 차라리 프로레슬링에서 머리를 조여대는 헤드락(Headlock) 같았다. 그렇게 짜증나고 위에 경련까지 일으킬 만큼 싫은 것이었다.

며칠 전에는 또 다른 대란을 맛보았는데 그건 바로 인터넷 대란이다. 이것도 일종의 교통대란과 비슷한 것인데, 그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맛보게 해주었다. 워낙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해 댔고 또 이걸 읽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인터넷이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 것이므로 그 사태와 온갖 피해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종의 악의적 인터넷 웜(Worm)이 원인이었다고 알려진 이번 사태는 일종의 보안 관련 문제였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예전에 벌써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보안 패치 파일을 제공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패치들을 일일이 다 설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워낙에 윈도우 기반의 운영체제에 보안패치가 많이 릴리즈되다 보니 그럴만도 하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윈도우 기반의 서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으니 앞으로도 이런 문제는 또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일단 이번에 한 번 단단히 혼이 났으니 앞으로 한동안은 열심히 보안 패치를 설치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필자는 나름대로 컴퓨터의 보안을 꼼꼼해 해왔다고 자부해왔다. 외부 ADSL 회선에는 기본적인 방화벽 기능이 내장된 공유기를 사용했고, 사용중인 PC에는 모두 파이어월 소프트웨어가 설치돼 있다. 바이러스 프로그램도 물론 상주시켜 놓고 있다. 패스워드도 몇 가지 부류로 분류해서 하나가 노출되더라도 다른 중요한 정보가 보호될 수 있게 했고 혹시라도 필자의 컴퓨터 파일이 외부로 유출될 때를 대비하여 중요한 파일에는 암호를 대어야만 내용을 볼 수 있도록 설정해 두었다.

컴퓨터가 고장나거나 하드디스크가 지워질 때도 문제가 없도록 백업도 주기적으로 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ZIP 드라이브를 사용했지만, 요즘엔 아예 C: 드라이브와 같은 타입의 D: 드라이브에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정보를 복사해 둔다.

이것도 한 컴퓨터에 같이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집 안의 다른 컴퓨터 한 대에도 가끔씩 사본을 만들어 둔다. 그리고 얼마 전에 얻은 중고 UPS에 필자의 주 컴퓨터와 외장형 ADSL 모뎀, 그리고 허브의 전원을 연결하여 정전 시에도 데이터 손실이 최소화되도록 해두었다.

이처럼 약간은 신경증적이라고 할 만큼 보안에 철저한 필자이지만, 이번 인터넷 대란을 겪으면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웹 검색도 못하고 메일도 읽고 쓰지 못했으며 이미 받아놓았던 메일도 웹호스팅 업체의 메일 서버에 연결되지 못하는 바람에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앞으론 메일 사본도 PC에 저장되도록 설정해야 할까보다.

그래도 최소한 홈네트워킹은 제대로 동작하고 있었으니 필자의 컴퓨터에서 아들내미의 PC로 영화 파일을 복사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아무튼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나 혼자만 열심히 보안 대책을 세워도 충분치는 않았던 것이다.

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해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이전에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하는 MSN 메신저 서비스까지도 심심하면 다운되곤 하지 않았는가. 또 어느 신문의 보도에서처럼, 오죽하면 MSN 메신저 서버의 일부까지 그 SQL 웜이 감염됐겠는가. 그보다는 너무도 그들의 제품에만 의존했던 우리의 네트워크 환경과 보안에 안일한 정신자세가 문제였다고 본다.

인터넷의 기본 구조가 만들어진 배경을 생각하면 이번 사태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핵 전쟁에 대비해서 절대로 다운되지 않는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개발된 것이 인터넷이지 않았던가. 이제 오히려 전면적인 핵 전쟁도 아닌 수백 바이트짜리 프로그램 하나로 인해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것이다. 그 당시 인터넷의 창시자격인 미국 국방부의 과학자들은 오늘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네트워크의 진보가 가져온 결과인 셈이다.

이번에 정통부에서는 ‘전국민’에게 보내는 ‘포고문’에서 즉시 컴퓨터를 껐다 다시 켜고 패치 파일을 설치하라고 했다. 간신히 다시 접속된 인터넷에서 그런 내용이 적혀있는 팝업 윈도우를 보고, 필자도 하마터면 정통부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할 뻔 했다. 필자마저도 그랬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스런 마음에 애꿎은 컴퓨터를 죽였다 살렸겠는가. 일반인들은 사용하지 않는 서버에만 필요한 조치인데 말이다.

패치파일을 구하기 위한 트래픽이 몰려서 또 한 번 몇몇 서버가 불통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치 대지진 후에 여진이 발생하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민방공 화생방 훈련을 한다고 모두 비닐봉투를 뒤집어쓰고 엎드려있던 기억까지 났다. 왜 또 반드시 전원을 껐다 켜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재부팅을 하거나 리셋버튼을 누르는 것보다 더 확실하다고 정통부에서 판단해서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필자의 집에서는 ADSL을 통한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총체적인 불통인지 아니면 필자만의 상황인지 알 길이 없다. 전화국과의 링크는 되어 있는데 PPPoE 연결은 되지 못하고 있다. 독자들이 이 글을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인터넷이 다시 뚫렸거나 아니면 특단의 방법을 써서 ZDNet에 글을 전한 결과일 것이다. 거실에 가서 TV를 켜고 뉴스를 보니 KT의 메가패스 서비스가 전국 11개 지역에서 불통이고 곧 해결되리라는 소식이다.

최소한 스카이라이프 위성을 통한 TV 수신에도 문제가 없고, 휴대폰과 유선전화도 정상이고, 전기도 제대로 공급되고 있으니 다행이겠다. 더구나 인터넷 연결도 곧 재개될 것이라고 하니 우선 당장 걱정거리는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 불안한 마음은 왜일까. 마치 미국 9.11 테러 이후에 무역센터 빌딩에 출근하자면 창문을 통해 보이는 비행기가 다 심상치 않게 보였던 그런 심정이다. 결국 이번 인터넷 대란은 최소한 필자의 생활과 정신에 두고두고 영향을 끼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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