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와 ‘미션 임파서블’

By | 2002-12-19

어린 시절 재미있게 봤던 외화 TV 프로그램 가운데 ‘제5전선’이라는 미국 첩보 드라마가 있었다. 이것만 가지고는 어떤 드라마인지 잘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원어 제목이 힌트가 될 것이다. 바로 “Mission Impossible”이 원제목이다.

이 제목의 영화가 톰 크루즈를 주연으로 벌써 2편이나 상영돼 히트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제5전선’이 대충 어떤 내용을 담은 드라마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특수효과 기술도 그렇고 과학기술의 발달에 대한 상상력도 요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과 같은 정도의 현란한 화면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극적인 완성도는 꽤 괜찮았다고 기억된다.

그 예전의 ‘Mission Impossible’ 내용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스파이 기법을 들자면 변장과 도청이었다. 이중에서 변장은 함부로 흉내내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던 필자는 도청이라는 것을 실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의 전화기는 요즘같은 톤다이얼 방식의 전자식이 아니라 모두 펄스다이얼을 사용하는 기계식이었다. 그래서 전화기 내부에는 전화선과 수화기를 격리 연결해주기 위한 커다란 트랜스포머가 들어있었다.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에 이 트랜스포머 주변에는 자연히 전자기장이 발생하게 되는데 필자가 전화기 밑에 작은 싸구려 트랜스포머를 하나 붙이고 그 출력을 녹음기의 마이크 단자에 연결했다. 이로써 성능은 조악하지만 도청기기를 하나 만들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이 올라가게 되는 12월 19일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시골에 살다 보니 별달리 시끄러운 선거운동 모습을 보진 못하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후보들에 대한 여러 가지 소식을 어쩔 수 없이라도 접하고 있긴 하다. 이런 저런 뉴스거리 가운데 흥미를 끌었던 기사가 있었다.

이회창 후보가 도청을 방지하기 위해서 비화기(秘話機) 휴대폰이라는 것을 구입해서 사용한다는 소식이었는데, 그냥 그 제목으로만 끝나면 별다른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화기 장치가 이 후보가 사용하는 휴대폰에만 설치되면 이 휴대폰을 통해서 다른 어떤 전화기와도 암호화된 통화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보이는 게 아닌가. ‘아니, 설마 그럴리가……’하면서 기사 내용을 더 읽어보았다.

“국내 한 벤처기업에서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비화기 휴대폰은 기존 휴대폰 내부에 별도의 칩을 장착한 것이다. (중략) 비화기는 원래 쌍방 전화기에 모두 설치해야 하지만, 이 후보가 구입한 새 휴대전화는 한쪽에만 설치해도 도·감청을 막을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칩이 내장되어 있다”

엔지니어로서 생각해 보면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이 ‘뭔가 잘못 알고 있구나’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이런 뉴스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자면 아주 다양한 면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그 비화기 장치를 만든 벤처기업이 자사 제품의 성능을 자랑하면서 좀 과장했다거나, 둘째 제품에 대해서 구매자가 너무 과신하여 제조자가 말하지도 않은 점을 자랑했을 수도 있고, 셋째 사용자가 기자들에게 비화기 전화기를 알리면서 과장해서 말했을지도 모르는 등 무수히 많다. 그래도 한쪽 전화기에만 암호화 장치를 쓴다는 것은 필자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요즘 사용하는 이동전화기라면 당연히 CDMA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인 상식(물론 기술적인 이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상식)선에서 볼 때 CDMA 휴대폰과 기지국 사이의 전자파 신호는 도청을 할 수 없다고 간주할 수 있다.

도청을 한다면 기지국에서 운영센터로 가는 신호가 약간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지만 이것도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이 신호가 다시 다른 휴대폰으로 연결되는 경우라면 역시 도청할 방법을 생각해 내기 힘들다.

만약 휴대폰에서 일반 전화기와 통화를 한다면 그땐 문제가 달라진다. 일반 전화기의 도청은 필자가 중학생일 때 했던 것처럼 쉽기 때문이다. 문제는 휴대폰에서 어떤 일반 전화기로 전화를 할 지 모른다는 점이다. 결국 이것도 휴대폰을 가진 사람을 도청하는 것이 아니라 PSTN 공중망에 연결된 일반 전화기를 도청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휴대폰 도청에 해당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좋다. 일단 CDMA 휴대폰 도청이 가능하다고 간주해보자. 그래도 한쪽 전화기에만 암호화 장치를 쓴다는 것도 일반 엔지니어의 상식으론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CDMA 전화기 자체가 암호화 장치나 마찬가지일 뿐 아니라 그 암호화 장치를 기존 휴대폰에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기존 휴대폰에 연결한다는 것은 음성을 암호화해서 휴대폰의 마이크로 넣어준다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어쩌면 필자가 알고 있는 수준을 많이 벗어나 있는 그런 기술이 개발돼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요즘 각광받는 GPS같은 기술도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던가. 하긴 위에서 보였던 도청 방지용 비화기 전화기도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나온 뉴스이다.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은 도청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그저 가벼운 얘기거리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 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좀더 넓힐 필요는 있다. 그래야만 비화기 전화기의 경우와 같은 몰이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이번 선거의 결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좀더 잘 하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을 예전보다 더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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