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야 놀자

By | 2002-11-04

가끔 서울 시내에 갈 일이 생기면 코엑스 지하의 대형 서점에 들르곤 한다. 특별히 찾는 책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저 책이 가득 쌓여있는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이다. 예전부터 책방 드나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많은 책들을 비록 읽지는 못해도 그냥 종이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양식을 충분히 섭취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것은 책이 그리 풍성하지 않던 어린 시절에 아무 책이나 마구 읽어대던 버릇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값을 아끼기 위해 헌책방을 많이 이용하던 시절에 가지게 된 책에 대한 동경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요즘은 책방에 가도 옛날같은 느낌은 오지 않는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대형서점의 번잡함 때문에, 엄청나게 쌓여있는 비슷비슷한 내용의 책들 때문에… 이런 이유들이 모두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큼 또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외국어 교재, 특히 영어 학습 교재 때문이다. 서점 입구를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것은 당연히 주간지나 월간지 등의 정기간행물 코너인데, 그곳을 지나치면 곧바로 영어 테이프, 비디오, 서적 등이 쌓여있는 곳을 지나야 한다. 결코 마음의 양식이랄 수 없는 그 교재들을 보면 금새 숨이 막혀버리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필자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어린이 영어 교재이고 특히 유아용 교재를 보면 괜시리 한숨부터 나온다. ‘아, 저런 영어 교재로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힘들어하게 될까.’ 사실 조기교육이라는 미명아래 가르치는 과목이 영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데도 필자는 영어에 대해서만 신경이 쓰인다.

다른 교육 아이템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의 혀놀림과 언어 논리로 세뇌돼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적지 않은 부모들이 자기 자식이 꼬부라진 혀로 영어로 단 몇 마디라도 떠들어대면 좋아하는 것 같다.

남 앞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턱이 도도해지며 한국어로 떠들어대는 다른 아이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우쭐대는 경향까지 있어 보인다. 부모의 그런 허영심과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 어떤 아이들은 좋건 싫건 영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작 올바른 우리말을 배우기도 전에 말이다.

컴퓨터 교육의 경우는 영어와는 또 다르다. 영어 공부를 좋아하는 어린이들도 많지만 컴퓨터 공부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은 훨씬 더 많다. 컴퓨터로는 재미있는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영어가 정식과목으로 채택되기 전에 벌써 컴퓨터 교육이 시작되기도 했다.

부모들은 영어를 못하면 큰일난다는 생각만큼이나 컴퓨터를 못하면 큰일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50만원짜리 냉장고도 심사숙고 끝에 구입을 하네 마네 하던 형편에도 100만원이니 200만원이니 하는 컴퓨터를 자식들에게 덜컥 사주곤 했고, 냉장고는 5년을 쓰네 10년을 쓰네 하면서도 컴퓨터는 다른 집보다 성능이 떨어지면 안된다며 매년 업그레이드를 시켰다. 이게 모두 교육을 위해선 집도 팔 수 있다는 의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컴퓨터라는 물건은 어린 아기들에게는 워낙 흥미를 끌게 만든다. 울긋불긋한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또 그런 그림도 계속 다른 것으로 바뀌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어른이 마우스와 키보드를 토닥거리는 것도 장난감처럼 보이게 해준다.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어서 아이들이 처음 컴퓨터에 접하는 시점이 상당히 어려졌다. 심지어는 유아 전용 컴퓨터와 주변기기도 등장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예쁜 아기가 영어로 조잘거리고 또 컴퓨터 앞에서 게임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도 싶다.

그러나 필자는 컴퓨터를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생활에 밀착시키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컴퓨터를 통해 그림을 그리고, 색칠도 하고, 받아쓰기같은 글자 공부도 하며, 숫자놀이도 할 수 있다는 어떤 제품을 보면 그 모든 것이 다 컴퓨터 없이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방바닥에 엎드려서 혹은 책상 앞에 앉아서 종이를 놓고 크레용을 작은 손에 쥐고 하는 것이 더 큰 학습효과를 가져오며 지능계발에 더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컴퓨터 모니터라는 평면 속에서 마우스만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너무도 단순하고 차가우며 사물에 대한 상상력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컴퓨터 화면 속에서 보여지는 동화 타이틀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침대 옆에서 자기 전에 읽어주는 동화책이나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인간적인 교류를 통해 유대감을 심어주진 못할 것이다. 항상 꼭 같은 성우의 목소리와 흐름과 감정표현보다는 읽어줄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지고 또 줄거리도 그 상황에 맞춰 들려줄 수 있는 고전적인 방법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제 집에 있는 PC 부품을 모아서 필자의 아들녀석 방에 컴퓨터를 하나 설치해 주었다.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교 입학이니 하나쯤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거의 컴퓨터와는 인연을 맺지 않고 커오다가 요즘에 와서는 조금씩 엄마 컴퓨터를 만지작거려 왔는데 어제 저녁에는 벌써 저녁밥 먹으라는 소리도 못들을 정도로 뿌요뿌요 게임에 빠져버렸다.

이처럼 애들이 컴퓨터에 폭 빠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인가보다. 그래도 필자는 아이가 컴퓨터보다는 종이와 연필과 책을 가지고 놀고, 또 여가 시간에는 집밖에서 자연과 함께 하기를 바라고 있다. 컴퓨터는 단지 보조적인 역할을 하길 원하는 것이다.

필자 집 거실의 TV 옆에는 노트북 PC가 놓여있고 이 컴퓨터는 상시 인터넷에 연결돼 있는데 TV를 보다가 혹은 대화를 나누다가 잠깐 생각나지 않는 게 있을 때는 무조건적으로 웹검색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하여 거의 항상 필요한 대답을 얻고 있는데 요즘엔 그것 때문에 상상력이 점점 부족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대답을 찾기 위해 예전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답을 찾았는데 이젠 그렇게 머리를 굴릴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두뇌개발이 왕성한 어린 시절에는 정확한 답이 즉시 튀어나오는 것보다는 어떻게 사고하는지를 배우는 게 더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현란한 색과 모양을 가진 완벽한 그림을 컴퓨터 키보드와 마우스를 통해 만드는 것보다는 크레용과 종이를 가지고 손을 더럽혀 가면서 그림을 그리는 게 정서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올바른 교육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산에 올라가서 식물과 곤충을 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나서 컴퓨터를 이용한 자연학습을 하는 게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컴퓨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애들을 컴퓨터 앞에 묶어놓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애들이 컴퓨터를 좋아하건 안좋아하건 컴퓨터는 단지 교육 수단의 한 조각으로만 봐야 할 것이다. 영어가 유아원과 유치원까지 파고든 것처럼 아직은 컴퓨터가 그렇게 깊이 들어간 것은 아니기에 미리 그에 대해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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