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의 ‘이상과 현실’

By | 2002-10-09

최근에 미국의 거대기업들의 회계부정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그 회사들의 입지가 크게 휘청거리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아예 문을 닫는 일까지도 생겼다. 그걸 보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가지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역시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라고 하며 한편으로는 고소하게 여기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며 자위하기도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부적절한 회사 경영을 보면서 비난하는 말을 할 때 “미국”에선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라는 식으로 말을 하곤 한다. 그것이 비교적 사실이긴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곳 사람들이 모두 강직해서라기보다는 그 사회의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빠져나가기에 충분한 구멍이 있다면 너도나도 그곳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특히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깨끗한 경영인’ 혹은 ‘정도를 걷는 경영자’라고 칭송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문구는 주로 대기업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광고문구에서 사용하기 위해서일 뿐 실제로 그렇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편 하이테크 벤처기업의 경우에도 그렇게 칭송받는 경영자들이 적잖이 있다. 남의 귀감이 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일은 참 좋은 일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칭송받을 수 있을 때 더 훌륭한 명랑사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매 학기말이나 졸업할 때 받는 상 중에 모범상이 있었다. ‘품행이 방정하여 타의 모범’이 되므로 받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보면 우등상이 더욱 대접을 받는 게 현실이었다.

즉 타의 모범이 되어서 상장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선행을 하는 것보다는 시험성적이 우수할 때 더 상장을 받기가 유리했다. 대학교에 가서는 물론 모범상이란 게 없다. 오직 졸업할 때의 우등상이 있을 뿐이다. 그게 어른이 되면서 달라지는 현실이었다.

비즈니스 세계는 냉혹하다고들 말한다. 다른 업체와의 기술 경쟁이 심해질수록, 재정적으로 압박을 당하면 당할수록, 매출이 제대로 오르지 못해 예산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할수록 그 냉혹함은 힘을 받게 된다.

그때 부딪히는 것은 “착한 사람”의 이상과 현실이다. 다른 회사의 비즈니스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면 당신은 그걸 못본 척 덮어버리겠는가? 세금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세법상의 허점을 알면서도 이용하지 않겠는가? 예산에 문제가 생겨서 직원 몇 사람의 목을 잘라야 하는데도 그들의 경제상황을 감안해서 그대로 눌러앉히겠는가?

가짜로 사내 연구소를 만들면 적지 않은 혜택이 주어지는데 그걸 마다하겠는가? 아직은 85%의 완성도를 갖는 기술이지만 목전에 닥친 발표회에서 그걸 미완성이라고 말할 것인가? 투자자 앞에서는 모든 것을 장미빛으로 물들여 말하고 싶지 않겠는가?

약 1년반의 짧은 기간에 불과했고 또 재정적인 모든 것을 미국 본사로부터 제공받는 편안한 위치에서였지만 필자가 그 회사를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비즈니스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본 바로는 경쟁사는 철저히 누르고 협력사로부터는 최대한 얻어오면서 최소한을 지불하며 직원에게는 최소한의 임금으로 최대한의 노력을 얻어내는 것이 차라리 정도 경영이랄 수 있었다.

많고 적음에 차이는 있겠지만, 직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미디어에 대해서는 과대광고를 할 수밖에 없다. 단지 그게 문제가 될 만큼 하면 안되고 또 발각되지 않을 만큼 하는 것이 깨끗한 경영자의 덕목이 돼버리는 게 현실이었다는 것이다.

어느 소설중에 전쟁 후의 암담한 상황에서 주인공의 시누이인 새색시가 양공주가 되는 한이 있어도 자식들은 굶기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필자가 아는 누군가도 오랫동안 아기를 가지지 못하다가 늦게나마 애가 생긴 뒤에 “이 아이를 위해선 도둑질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식의 말을 하기도 했다.

옛 속담에도 ‘사흘 굶어 담 아니 넘을 놈 없다’고 했으니, 그 상황이 돼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심하게 말하면 진짜 깨끗하게 회사를 운영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깨끗함의 기준이 초등학생의 그것과 다르거나 아니면 회사가 망해도 먹고 살만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 기업들의 최근의 회계부정의 원인을 살펴보면 적지 않은 경우가 CEO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즉 이른바 월급사장인 그들은 월급보다는 실적에 따른 스톡옵션 내지는 보너스를 받기로 돼있어서 실적하락을 두려워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가짜 매출까지 만들어내는 일까지 스스럼없이 하곤 했던 것이다.

하긴 스톡옵션이 수백만 달러에서 심지어는 수천만 달러까지 되기도 하니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만도 했으리라. 반면에 필자가 아는 우리 주변의 몇몇 경영자들은 자신이 아니라 회사와 사원들을 위해 그런 어쩔 수 없는 부정을 저지르고 있기도 하다.

회계 부정이라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양 같아보이기만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근원이 그처럼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로 이미 뛰어들었으니 할 수 없다. 모범상보다는 우등상이 더 인정받으니 어쨌든 결과는 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최소한 그런 점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 본다면, 앞에서 언급했던 정직하게 사업해도 잘 살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구축돼 제대로 가동된다면 진짜로 착하게 살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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