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에 대한 맹신, 그리고 오해

By | 2002-09-18

지난 번 컬럼에서 GPS에 대한 얘기를 하고 나니 외신에선 또 약간 황당한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리딩대 사이버공학과의 케빈 워릭(Warwick) 교수는 몇 주 내로 올해 11살인 다니엘 듀발(Duval) 양의 팔 피부 안에 긴급상황 때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마이크로칩을 이식할 예정이다. 이 마이크로칩은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 위성위치확인시스템)가 포착할 수 있는 전파를 내보내 듀발 양이 어디에 있든지 정확한 위치를 컴퓨터에 나타내게 된다. 학교 식당 관리인으로 일하는 듀발 양의 어머니는 “여자아이 2명이 납치돼 참혹하게 살해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딸이 밖에 잘 나가지도 않는 등 몹시 불안해했다”면서, “마이크로칩을 이식해도 납치를 막을 수야 없겠지만, 즉각 추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GPS 수신기를 몸에 내장한다고 해도 납치후에 그 위치를 파악해낼 가능성은 무척 낮은 편이라고 하겠다. 기사의 내용은 실제로 그렇게 실용화됐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그렇게 실험해본 것일 뿐이리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GPS 기술의 가장 큰 맹점은 Open Sky 원칙이다. 즉 GPS 수신기의 안테나가 충분한 숫자의 GPS 위성으로부터 신호를 받을 수 있도록 안테나 위에 넓은 영역에 걸쳐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GPS 수신기를 가지고 건물 안에 들어간다면? 당연히 GPS는 무용지물이 된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을 타거나 자동차를 타거나 혹은 잎이 우거진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도 GPS 기능은 제대로 동작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건물 안에서 창문을 통해 부분적으로 위성 전파를 받아도 충분하지 않다.

납치범을 염려하는 경우라면 차라리 순수 GPS보다 정밀도가 떨어지지만 휴대폰 추적을 통하는 편이 더 나은 방법이 될 것이다. 예전에는 어느 특정 기지국의 서비스 영역 안에 있는지만 알려줄 수 있었으나, 요즘엔 도심 지역에선 기지국이 워낙 촘촘하게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또는 아예 휴대폰에 GPS를 내장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퀄컴의 GPSOne같은 것이 그 예인데, 이것도 물론 휴대폰 내부에 GPS 기능을 내장한 방식이므로, 위와 같은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국내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KTF의 엔젤아이같은 서비스가 이미 시작된 상태이다.

아무튼 부모가 아이의 안전을 위해 GPS 칩을 몸에 내장시키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정상적으로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때는 정상동작 하다가 납치되면 거의 대부분 차 안이나 지하실 혹은 창고같은 폐쇄된 장소에 숨겨질 것이기 때문에 아이를 찾는 데 있어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지난번 컬럼에 대한 토크백에서 어느 독자분이 언급한 영화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이다. 혹자는 그 영화에 나오는 것같은 추적 장치가 이미 존재한다고 믿고 있기도 하지만, 현재 기술로는 그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어느 특정 빌딩 안에 요소요소마다 감지기를 설치하는 식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할 지도 모르겠지만, 외부로부터 격리된 불특정한 장소에 있다면 영화에서처럼 그 위치를 꼬집어 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저 영화 속의 가상 세계라고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GPS 위치 추적 장치로 인해 사생활 노출에 대해 불안감을 갖기 시작한다면 그걸 방지해 준다고 광고하는 상품들이 시장에 출현할 것이다. 가령 하늘의 GPS 위성으로부터 오는 전파를 막아주는 양산이라든가 혹은 그런 기능을 하는 외투, 또는 전파교란기라는 이름의 조악한 장치들이 그 예이다.

요즘도 길을 가다 보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토끼 귀 모양을 한 실내용 TV 안테나를 늘어놓고선, “TV 전파를 증폭해 줍니다”라고 떠들며 팔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도 실제로 TV를 켜놓고 화면이 잘 보였다 안 보였다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런가 하면 여러 해 전에 VDT 증후군에 대해 많은 사람이 걱정하던 시절에는 전자파를 차단시켜 준다면서 TV와 키보드 위에 붙여놓는 장치를 판매하던 때도 있었는데 필자가 다니던 회사에서도 거의 대부분의 컴퓨터 위에 그게 붙어있을 정도로 많이 팔렸다.

하이테크를 연구한다는 곳에서도 그럴 정도면 기술자가 아닌 일반 대중의 경우라면 어느 정도로 인식하게 됐을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연구소의 어느 소프트웨어 개발한다는 양반이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는 “(c) brain” 바이러스에 대한 소식을 듣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러니까 앞으론 디스켓에 먼지 안쌓이고 담뱃재도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하란 말이야. 지저분해지면 컴퓨터 바이러스가 옮는다구!” 그 때 그 양반의 심각했던 표정이 아직도 눈 앞에 선한데 최근에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지금 그 사람은 어느 대학교에서 전산과 교수를 하고 있단다.

GPS와 같은 첨단과학의 힘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과 한계도 함께 존재한다. 첨단과학을 마치 전지전능한 것 마냥 맹신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그 실상을 파악해 행동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제대로 그 기술들을 활용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GPS도 마찬가지고, 불결함 때문에 전염되는(?) 컴퓨터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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