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비가 많이 내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간헐적으로 비가 내리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쨍쨍한 햇살 쬐어 본 게 언제였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필자가 살고 있는 동네도 강수량면에서 전국 1, 2위에 들 정도로 비가 많이 내렸다. 집터를 마련하고 집을 지은 지 얼마되지 않는 바람에 계속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졸여왔는데 결국은 올 게 오고 말았다. 집 뒷마당에서 산쪽으로 올려 쌓은 축대가 와르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간밤에 얕은 잠이 들었을 때 뒤쪽에서 천둥소리 비슷한 게 들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쌓은 돌이 무너질 때 서로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였다. 여섯 살쯤 됐을 때 집 마당이 무릎까지 잠겼던 사건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 이외에는 전혀 수해로 인한 피해를 겪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집을 짓자 마자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집 안까지 들어찬 물을 퍼내던 그 한밤 중에 우리 철부지들은 마당에 들어온 미꾸라지를 잡으며 한참 재미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 어른이 되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래도 인명이나 주택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비가 워낙 장기적으로 내리다 보니 여기저기서 부실공사의 흔적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우선 조금씩 스며든 빗물로 인해 천정과 벽이 만나는 구석에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다. 이것은 2층 발코니를 비닐로 뒤집어 씌우는 임시방편을 통해 대충 해결됐다. 날씨가 완전히 개고 나면 방수 페인트를 사서 발라줘야겠다.
다음으로는 바닥에서 습기가 비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원인 규명이 어려울 뿐더러 기초공사를 한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서의 일일 수 있으므로 수리도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가 많이 오면 집의 어느 한 부분에서 누전이 되는지 자꾸만 누전 차단기가 내려갔다. 일단은 그 부분의 전원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220V 전원 가운데 한 선이 접지와 합선이 돼있는 위험 상태이다. 그래도 다시 한 번 긍정적으로 보자면, 여전히 전기가 들어오고 전화와 ADSL 회선도 건재하며 지하수 공급과 화장실 정화조도 문제가 없다. 그래, 이 정도면 아직은 살만하지 않은가?
집은 한 번 짓고 나면, 벽을 뜯어내거나 기초를 다시 파내기 전에는 그 품질에 대해 자세히 파악해 내기가 쉽지 않다. 보통은 들어가 살면서 차차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 때문에 공사를 시작하며 진행하는 중간에 계속 감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리를 따로 두는 것은 보통 대형 공사에서나 있는 일이고, 작은 집 하나를 지으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집을 새로 짓고 나서 그 품질에 대해 검증해 볼 과학적인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그러다 보니 생각이 미치는 것은 컴퓨터였다.
이런저런 컴퓨터 관련 잡지를 읽거나 웹사이트를 방문해 보면 흔히 마주치는 기사 내용들 가운데 제품리뷰와 벤치마킹같은 내용이 있다. 보통 새로 출시된 제품을 하나 골라 잡아 그에 대해 요모조모 살펴보는 게 제품 리뷰라고 한다면, 벤치마킹의 경우에는 비슷한 기능을 가진 여러 업체의 제품들을 한데 모아 놓고 성능과 기능 등의 품질을 서로 비교하는 게 일반적이다.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의 벤치마킹 방법은 비교적 간단해 보인다. 각 분야에서의 실행 속도를 측정해 주는 벤치마킹 프로그램을 돌려 결과를 비교하거나 아니면 직접 게임이나 그래픽 프로그램 등을 실행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소프트웨어나 컴퓨터 하드웨어의 단적인 성능 비교 내지는 품질 체크는 대충 될 수 있을 것이다. 주택에서처럼 말이다.
그런데 필자가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집 안에 들어가 있는 세간살이가 아니라 집 그 자체에 관한 것이다. 즉 컴퓨터에서는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하드웨어를 생각하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 그리고 케이스와 전원장치로부터 내부의 메모리와 마이크로프로세서 등까지 말이다. 그래서 이런 요소에 대한 리뷰와 벤치마킹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는 편인데, 실제로 기사에 실리는 내용에 대해서는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다.
오늘 아침에 읽었던 사운드 카드에 관한 벤치마킹 기사를 예로 들어보자. 거기서 가장 큰 사진은 사운드 카드의 전체 모습을 찍은 것인데, 그 밑의 설명은 ‘깨끗한 디자인’이 주된 내용이었다. 또 사용된 칩 위의 라벨을 벗겨내어 칩의 이름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내용, 제공되는 드라이버가 담겨있는 CD-ROM의 사진, 그리고 사운드 재생할 때의 CPU 점유율 비교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맨 마지막의 성능 테스트로 넘어가면 그저 듣는 사람의 느낌상 스테레오 분리가 어떤 것 같다든가 혹은 저음이나 고음 부분이 어떤 것 같다는 정도였다. 집에 비교하자면 집 안에 들어가니 벽지가 깨끗이 발라져 있다거나 마루가 원목으로 깔려있다는 것으로 들릴 것이다.
오디오에 관한 제품을 테스트한다면 최소한 입력 대 출력의 재현 충실도, 주파수 응답도 측정, 좌우 분리도 같은 사항 등을 계측 장비로 측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내용은 어지간한 오실로스코프 한 대와 각 주파수 별로 샘플 오디오가 저장된 CD만 가지고도 수행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며칠 전에 읽어본 PC용 전원 장치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사 내용은 환기팬의 소음이 귀에 거슬릴 정도다 아니다, 케이스를 만져보니 뜨겁더라, 드라이브용 커넥터가 몇 개 나와 있더라는 정도였다.
가끔은 전원장치의 케이스를 뜯어서 내부를 살펴보며 콘덴서(정확히는 커패시터라고 불러야 하지만) 용량이 충분하느니 환기팬이 슬리브 방식이 아니라 볼 방식이라서 좋으니 하는 정도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심도있다고 할 정도였다.
명색이 전원장치라고 하면 입력 대 출력의 변환 효율도 재보고, 순간 단전이나 서지(Surge)에 대한 출력단의 영향, 미세한 교류 노이즈라고 할 수 있는 리플(Ripple) 전압같은 것도 재서 평가하면 좋지 않을까도 싶다.
이런 사항들은 컴퓨터의 단적인 성능에는 별로 영향을 안 미치지만 장기적으로 마더보드 고장의 원인을 제공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새로 지은 집에 이사를 들어가서 며칠만에 여기저기 망가지지는 않는다. 여름 수해도 겪어보고 겨울도 지내봐야 알 수 있음이다.
지난번 컬럼에서도 오랜 경력을 가진 전문 컬럼니스트에 대한 수요가 없는 게 아닐까하는 발언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는 것은 위에서처럼 좀더 심도있는 리뷰나 벤치마킹에 대한 수요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다수의 독자들이 관심을 안갖거나 혹은 이해할 수 없다면 필요없는 일일 수도 있어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좀더 전문 지식을 가진 테스터들이 좀더 심도있는 테스트 항목을 확인해 봐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명색이 컴퓨터 잡지나 전문 사이트라면 그 정도의 기술적인 뒷받침은 가지고 체계적인 분석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소비자들의 알 권리와 좋은 제품을 골라 쓸 권리 신장을 위해서도 그럴 뿐 아니라 컴퓨터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