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By | 2002-08-02

필자가 컴퓨터 매체에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때를 기억해 보려고 하니 정확히 언제였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대략 1989년이나 1990년 정도였나 보다. 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곳이 ‘마이크로소프트웨어’와 ‘소프트월드’ 가운데 어느 곳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처음에는 이 두 개의 월간지 중 한 곳에서 하드웨어 강의를 시작했고, 곧 이어 다른 곳에도 비슷한 부류의 글을 매달 싣기 시작했다.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묻는다면 ‘불만’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도 그리 큰 차이는 없지만, 당시에는 컴퓨터 잡지의 주된 내용이 프로그래밍 기법이나 새로운 소프트웨어 버전의 소개와 사용법 등으로만 일관되었는데, 정작 컴퓨터 자체의 하드웨어 기술 방향에 관한 기사는 별로 없었다. 또 있다고 해도 정확하지 않은 내용과 깊이없는 설명으로 일관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 현실을 탓하며 차라리 내가 쓰는 게 낫겠다고 말해버린 것이 동기가 된 것이다.

하드웨어 강좌식의 기사 쓰기는 꽤 여러 해 계속 됐다. 그 과정에서 소프트월드라는 잡지는 폐간됐고, 또 가끔씩 기고하던 몇 개 잡지도 명을 다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물론 그런 잡지사들에게서 밀린 원고료도 다 떼인 채로 말이다. 그게 주수입원도 아니고, 단지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쓴 것이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그래도 컴퓨터 잡지사의 명멸과 함께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기자 등의 인력, 그리고 그나마 층이 얇은 토양에서 간신히 발굴해낸 필자들이 지금은 무얼 하고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끔씩 느껴지곤 했다.

글 쓰던 초기에 마이크로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던 정보시대 사무실에 가끔 가보면, 안철수 같은 사람이 수줍은 표정으로 기자와 대화를 하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런 성공한 경우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필자들은 어디선가 예전처럼 컴퓨터 관련 글을 쓰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또 젊은 세대들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고 말이다.

문득 외국 컴퓨터 잡지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해져서 잠깐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90년대 초에 필자가 제일 좋아하던 컴퓨터 관련 잡지는 ‘Byte’였다. 나중에 판매부수가 떨어지면서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나중에 복간을 하기도 했는데, 이 잡지는 1976년경 PC, 즉 Personal Computer라는 명칭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Byte지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예전에 재미있게 읽곤 했던 컬럼의 저자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가령 제리 포넬 (Jerry Pournelle)이나 존 유델(Jon Udel)같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아하!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구나. 다른 잡지들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컬럼니스트중 하나로는, 필자가 그다지 선호하진 않지만 PC Magazine에서 존 드보락(John Dvorak)같은 사람들이 원기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IT 업계에 끼치는 영향력도 건재한 상태로 말이다.

이쯤 얘기를 꺼냈으니, 필자의 속내를 드러내 보기로 하겠다. 필자 자신도 IT 업계에서 그 사람들과 비슷하게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것은 지금처럼 계속해서 ZDNet 앵커데스크에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은 그리 알아주는 사람도 없지만, 앞으론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요즘 ZDNet 앵커데스크에 올라오는 컬럼에 대해 비판의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글 자체 뿐만 아니라 그걸 쓴 사람까지도 온라인 상에서 적지 않은 반론을 받곤 한다. 그런데 주변의 IT 관련 컬럼을 쓰는 사람들의 직업을 살펴보면 벤처 기업이나 중견 IT 기업의 대표 혹은 주요 인사인 경우가 가장 많다.

그들이 컬럼이라는 종류의 글을 쓰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령, 어떤 내용에서건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비난할만한 사안이 있는데, 자칫 회사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업의 대표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은 IT 관련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그들 또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들도 글을 쓰는데 있어서 명쾌해지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해도 매주 혹은 격주로 온라인 상에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만한 글을 쉼없이 올리긴 어렵다. 주제와 소재를 찾는 것도 큰 일이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도 만만치 않으며, 또 자신만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글발을 발휘하는 것도 제법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또 다른 부담은 온라인 상으로 즉각 전해지는 토크백 상의 의견들이다. 밤을 새도 모자랄 벤처기업의 일원이 어찌 매번 그 일에 많은 시간을 매달릴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나날이 고급화되고 복잡다단해지는 컴퓨팅 환경과 쉼없이 개발돼 나오는 하이테크 기술 속에서 우리 주위에선 그런 것들을 제대로 짚어줄 만한 컬럼니스트가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되고자 소망하는 필자도 그런 경지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전문 IT 컬럼니스트로 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어렵다. 우리의 사회와 경제 구조가 그런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기업들이 외면하고 언론에서 무시한다면, 결국 컬럼이나 토크백이나 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는 말은 IT 컬럼니스트에게도 쓰일 수 있다. 한두 해 정도 그 일을 하다보면 본업을 위해 떠나고, 또 다른 사람이 잠깐 들어오고, 그들도 또 떠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현상을 타개하고 10년씩 20년씩 계속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되려면 아무래도 독자 여러분과 같은 소비자들이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신뢰하고 필요로 한다면, 기업들이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도 그렇게 되고 싶어하지만, 더 훌륭한 후보감들이 가끔씩 눈에 띄기도 한다.

‘그들을 국회로’가 아닌 ‘그들을 앵커데스크’로 보낼 수 있는 전환기가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반대와 비난도 필요하고 공감과 지원도 필요하다. 우리도 IT 세계에서 벤처기업의 스타 뿐 아니라 선동가같은 사람도 함께 필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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