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촌놈이 되려는데…

By | 2001-12-14

서울에 소재한 대학교에 입학해 첫 방학을 맞았을 때, 서울 토박이 친구가 방학 기간 동안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물어왔다. “대전에 내려갈거야.” 그 친구의 다음 말은 이랬다. “아∼ 시골 다녀온다고?”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규모면에 있어 몇 손가락 안에 든다는 대전에 살면서 주변에 있는 무슨 군, 읍, 리 단위의 지역에 대해 시골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서울 사람에게는 대전마저도 ‘시골’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하긴 부산 사람에게 서울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시골’이라고 말했다가 면박받는 것도 본 적이 있으니, 서울 특별시민들에게 있어 서울 이외의 지역은 설령 부산같은 대도시일지라도 모두 시골이라고 불리고 있나 보다.

결국 ‘시골’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필자가 생각하는 어떤 토속적이고 향토적이며 농사와 연관된 이미지가 아니고, 단지 서울이 아닌 다른 곳을 가리키는 용도뿐인 것이다.

만 19세에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지 지금까지 어언 20년 가까이 흘러 필자는 이제 누가 뭐래도 확실한 서울 특별 시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뇌세포에 들어있을지 모르는 촌놈 컴플렉스는 여전히 서울 이외의 지역에 살게 되는 것을 꺼려했다. 그 때문에 그 20년 동안 단 한번도 서울 경계선 밖으로 주소를 옮겨 본 적이 없다. 정말 영양가 하나없는 촌놈 컴플렉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필자의 생각이 바뀌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무튼 이제 다시 촌놈이 돼보려고 한다. 아내와 아들내미도 함께 시골 아낙과 시골아이가 될 것이다. 여기서의 촌놈은 대전이나 부산같은 도시 지역에 사는 촌놈이 아니라, 정말 시골 촌동네에 사는 것을 뜻한다.

바로 서울을 벗어난 시골에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이사하려는 것이다. 이른바 전원주택이라고 하면 언뜻 느끼기에 외국 스타일의 통나무 집이나 고급 목재 주택을 연상할 지도 모르겠지만, 필자의 경제 사정상 그렇게는 안되고 아담한 조립식 주택을 생각하고 있다. 이 경우는 오히려 시골주택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사실, 최근까지도 전원에 묻혀 한동안 살아보려는 시도는 함부로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매일같이 직장에 다니면서 괜찮은 가격에 나온 쓸만한 땅이나 집을 찾으러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또 집짓는 일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장거리 출퇴근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은 직장없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 출퇴근의 부담이 크지 않고 시골 주택 장만에 투입할 시간도 충분해졌다. 그것이 가장 큰 동기이다.

자연 속에 묻혀 산다고 하면 사실은 문명의 혜택을 최소한으로만 얻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캠핑을 갔을 때나 해당되는 일인 것 같다. 자연과 친해지겠다고 해서 전기불 대신 촛불이나 등잔불을 켜고 생활하고 세탁기 대신 냇가에 나가 빨래 방망이를 두들기는 식으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지금 지으려는 집에는 세탁기와 냉장고, 식기세척기, 빨래 건조기와 같은 가전기구는 물론, 필자가 이제껏 머리 속으로만 욕심부려왔던 하이테크 시설을 설치하려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홈네트워킹이라서 방 3개와 부엌, 거실, 그리고 테라스에 모두 LAN 케이블을 깔아 둘 계획이다. 무선 네트워킹도 물론 고려 대상이다. 집 자체는 허접한 싸구려지만 엔지니어들이 머리 속에 흔히들 그려보는 그 그림을 실현시켜볼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부동산 업자와 함께 양평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괜찮은 곳을 발견했다. 비록 그림같이 멋진 입지조건은 아니었지만 땅이 골짜기 중턱에 있고 동네가 아담했으며 무엇보다도 값이 저렴했다. 비교적 만족한 상태에서 문득 생각난 게 있어 물었다. “여기도 초고속 인터넷이 들어오긴 하겠죠?” 부동산 업자의 대답은 낙담스러웠다. “저기 아랫마을까지는 들어온다는데, 여긴 전화국에서 거리가 멀어서 안된데요.” “….”

고속 인터넷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전화선은 깔릴 수 있겠지만 최고 속도는 대략 26kbps밖에 나지 않을 것이다. 그걸 가지고는 뭔가 제대로 될 수는 없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서 집에서 일하려는 사람에게 전화선 모뎀만 사용하라면 우선 당장 생계유지 차원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생계 문제 이전에 인터넷없이 어떻게 살라고….

잠시 고민하던 차에 눈에 띈 것은 어느 집 지붕에 매달려 있는 둥근 금속 재질의 물체였다. 바로 위성 안테나였고, 그걸 보는 순간 무궁화 3호 위성을 통해 위성 인터넷을 서비스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어느새 우리나라에도 위성 인터넷 서비스가 꽤 보급돼 있는 게 아닌가.

초기 비용은 약 30만원∼80만원 대까지 기능과 성능에 따라 다양하지만, 월 사용료는 3만원에 불과했다. 비록 데이터를 받는 다운링크만 1Mbps의 비교적 고속으로 지원되고, 업링크는 여전히 일반 전화선 모뎀을 통해야 하므로 반쪽 고속 회선이지만 최소한의 조건은 충족되는 셈이었다. 더구나 같은 안테나를 통해 디지털 위성 TV 방송까지 시청할 수도 있고, 어차피 현재 보고 있는 케이블 TV 대신 뭔가 다른 게 필요하던 차였으니 그 정도면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요즘 시골은 더 이상 촌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됐다. 오히려 대도시보다도 더 첨단 시설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필자는 위성을 통해 연결되는 인터넷과 디지털 방송만 가지고도 안도감을 느낀다. 이제 다시 촌놈이 돼도 좋은 때가 됐다. 예전처럼 촌놈 컴플렉스를 가질 이유가 없어졌다. 오히려 주위에선 필자의 계획에 대해 부러워하는 눈치다. 하이테크는 이렇게 자연과 인간을 가깝게 해주는 역할도 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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