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우리 사장님

By | 2001-11-29

콜록, 콜록. 벌써 지난 일주일 내내 지독한 감기 몸살에 시달려왔고 지금도 여전히 감기와의 전쟁을 수행중이다. 원래 감기에 잘 걸리는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감기는 왜 이리 강력한지 도무지 맥을 못추는 상태가 돼버렸다.

그래도 매일 아침 정시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지 않고 많은 시간을 집에 머무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려니 생각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런 여유로움이 병을 앓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정상적으로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아파서 쓰러지지 않을 정도라면 회사를 빼먹을 수도 없었고, 또 업무가 있는 상황에서 일찍 퇴근해 이불 깔고 아랫목에서 몸을 지지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마냥 집에 늘어져 앉아있다 보니, 긴장이 풀리면서 정신적인 해이로 이어졌고, 그것이 그대로 육체적인 저항력 저하로 직결됐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분석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다시 규칙적인 생활을 하자는 결론을 내렸는데, 마침 어느 업체와 함께 6개월간 개인 자격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해서 다행히 앞으로는 육체적 리듬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얻은 결론은 백수건달도 체질이 따라줘야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새로 시작한 일을 살펴보고, 또 명함도 만들고, 대외적으로 소개를 하려고 하는데, 잠시 고민이 생긴 것은 직함을 무엇으로 만들지 정하는 단계에서였다. 일종의 프리랜서나 컨설턴트로서 일을 하는 것인지라 무슨 직함이 있을 턱이 없지만, 우리 사회 특히나 외부 업체들과 함께 일을 함에 있어서는 버젓한 직함없이는 그들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끌고나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나이가 그리 젊지만도 않은 필자에게 기존에 안면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그냥 ‘김 아무개씨’라고 부르게 하는 것은 그들을 부담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가장 무난한 부장이라는 직함이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없지 않았는데, 바로 며칠 전까지만해도 필자를 ‘사장’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에게 ‘부장’이라고 부르도록 해야하는 숙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어릴적에는 동네 구멍가게 주인을 부를 때 그냥 ‘아저씨’라고만 부르면 됐는데, 나이가 좀 든 후에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잠시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손님이 ‘사장님’이라고 주인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 답을 찾은 적도 있었다.

요즘 이사할 집을 찾으면서 자주 부동산 업자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들도 모두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필자가 살고 있는 주상복합 건물의 1층에서 식품을 판매하는 사람도 사장님, 저기 동네 어귀의 음식점 주인도 사장님이다. 하긴 모두들 사업자 등록증을 교부받아 자기 사업을 하고 있으므로 사장님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또 불러서 기분좋다면 그리 안해줄 이유가 달리 있겠는가? 이왕 ‘사장님’이라는 호칭에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으니, 불러서 좋고 불려서 또 좋은 일이라고 하겠다.

이렇듯 사장님이라는 직함의 인플레가 심해지다보니 기존의 규모있는 회사의 사장님들은 심기가 불편해지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 많은 종로 바닥을 걷다가 문득 ‘사장님’이라고 외치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렇게 돌아본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절대 다수의 행인들이 모두 그렇다는 점은 충분히 그들에게 불편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가 잘 아는 어느 벤처 업체는 제법 규모가 있고 사장의 나이도 지긋한데, 그곳에서는 ‘사장’이라는 직함을 쓰지 않고 ‘대표님’이라는 직함을 쓰고 있기도 하다. 분명 차별화에 성공한 아이디어라고 하겠다. 법인에서만 대표이사가 있으니 조그만 개인 사업자들은 ‘대표’라고 불려질 수 없는 것 아닌가. 한편으로는 아예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박사님이라는 단어가 호칭으로 쓰기에 편리한 것 같다. 20대에 박사학위를 따도 ‘김 아무개 박사’라고 무리없이 불릴 수 있고, 환갑을 넘어가도 여전히 똑같이 불리는 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평생 전화번호를 가진 것처럼 편리하다.

그러나 이 경우는 진짜로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만 사용할 수 있으므로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리 효용성이 높지 못할 뿐더러, 더러는 일부 사람들에게 ‘그래 너 가방 끈 길다’, 혹은 ‘오냐, 네 팔뚝 굵다!’라는 식의 반감을 초래할 수도 있어서 정답이 될 수만도 없는 듯하다.

필자가 한참 혈기 왕성한 시절에는 회사 내에서 박사학위 가진 과장 직급의 사원에게 사장이 ‘최 아무개 박사’라고 부르고, 일반 과장에게는 그저 ‘최 과장’이라고 부르는데 대해서 ‘앞으로는 저를 김학사라고 부르십쇼’라고 반기를 든 적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직함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미국 회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직급은 어느 정도 나뉘어 있지만, 상대방을 부르는 데는 거의 쓰이지 않고 실제로는 직접 이름을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미국 회사들이 국내에 진출해서 지사를 세우고 사업을 진행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내부적으로 직급체계와 직함이 기존의 한국식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사원들 사이의 서열을 없애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다른 국내 업체들과 일을 함에 있어서 직함이 없이는 상호 간의 비즈니스를 원만히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의 직함 체계가 가져다 주는 편리함도 있지만 그로 인한 폐해도 적지 않다. 특히 기술지향적으로 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벤처 업체에서는 내부적인 직함을 없애고, 모두 ‘김 아무개 님’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는 선배 사원은 후배 사원에게 ‘김 아무개 씨’라고 부르고, 그 반대 경우에는 ‘김선배’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열명이 채 안되는 작은 회사에서도 사장, 부장, 과장, 대리 등의 직함이 다 존재하는 게 현실아닌가? 어쩌면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 기업 문화에서 가장 먼저 다뤄야할 문제중 하나가 이러한 직함 체계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너무나 뿌리깊이 박혀있는 군대식 서열 체계와 체면 의식을 바라보면 쉽게 변화될 일이 아닌 듯 싶다.

혹은 기존 방식으로 잘하고 있는데 왜 고민하느냐는 주장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뭔가 바꿔버리고 싶다. 내 이름 석자 뒤에 붙는 직함을 가지고 나를 평가하는 것보다 내 자체를 통해 나를 평가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다. 업무로 만난 상대방이 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졌다고 해서 그걸로 평가하지 않고, 함께 일을 하면서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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