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의 거미줄

By | 2001-10-18

필자의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의 수가 2대가 된 것은 1996년이었다. 두 대의 데스크톱 컴퓨터 사이에서 플로피 디스크로는 감당하기 힘든 크기와 숫자의 파일들을 전송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아마 그때부터 홈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사용한 방법은 시리얼 포트를 이용한 것이었는데, 최대 속도가 높아 봤자 115200bps, 또는 소프트웨어에 따라서는 그 절반 속도밖에 지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씩은 밤늦게 두 컴퓨터를 켜놓고 전송을 시작시킨 뒤에 잠자리에 들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리집의 컴퓨터를 네트워킹시켰다고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곤 했었으니 감회가 새롭다.

세월이 좀 흐른 뒤에 다시 홈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10Mbps 속도의 LAN 카드를 두 컴퓨터에 연결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물론 두 컴퓨터 사이를 직접 케이블로 연결했다. 랜카드 이외의 네트워크 장비로서 허브를 사용한 것은 집에서 ISDN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던 시절이었는데, ISDN이 연결돼 있던 PC에 랜카드를 추가하고 이것을 8포트짜리 소형 허브를 통해 다른 PC에 연결한 것이 그 시초였다. 물론 여전히 10Mbps 속도였고, 허브 또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스위칭 방식이 아니었다.

작년 초부터 우리집 작업실의 모습은 바뀌었다. 집에는 두루넷의 고속 인터넷이 들어왔고, 거기에 물린 케이블 모뎀은 인터넷 공유기를 거쳐 내장된 4개의 10/100Mbps 스위칭 허브에 다다른다. 여기에 연결된 것이 필자가 주로 쓰는 노트북 컴퓨터, 그 옆에 나란히 자리한 아내의 데스크톱, 가끔씩 연결하는 서브 노트북, 그리고 아랫층 부엌에 있는 데스크톱 컴퓨터이다. 적어도 지난달까지는 이들을 위해 4개의 포트만으로도 충분했었다.

하지만 이제 포트가 모자라기 시작했다. 아들내미 방에 컴퓨터 한 대를 더 설치했고, 데스크톱 PC에 예전부터 달려있던 잉크젯 프린터-스캐너-팩스 복합기 말고도 인쇄 전용의 레이저 프린터를 하나 더 설치했는데, 이 프린터는 그 안에 내장된 제트디렉트 네트워크 포트를 통해 홈네트워크에 연결되므로 총 2개의 네트워크 포트가 모자란 것이다.

잠깐 동안 고민한 끝에 고물상자를 뒤져보니 예전에 사용하던 10Mbps 속도의 8포트 허브가 눈에 띄었다. 그걸 스위칭 허브의 한 포트와 연결해 놓고, 네트워크 트래픽이 별로 많지 않은 레이저 프린터와 서브 노트북용 예비 포트, 그리고 아들의 컴퓨터를 거기에 달아주었다. 모든 작업이 끝난 뒤 확인해보니 결과적으로 모두 제대로 동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대부분의 방에서 네트워크를 통해서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었고, 또 프린터에 즉시 인쇄 작업을 보낼 수 있었으며, 인터넷 사용에도 무리가 없는 환경이 구축됐다. 작업실에서는 모니터 옆에 케이블 모뎀, 인터넷 공유기, 그리고 8포트 허브가 나란히 앉아서 녹색과 주황색 불빛을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엔지니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기쁨이리라.

하지만 그 흥분이 가라앉고 안정을 되찾은 다음날, 마치 거미줄같이 얽혀있는 집안의 풍경은 필자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아랫층의 부엌으로 연결된 랜케이블은 작업실 창문의 틈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가서 아래의 부엌 창문으로 이어졌고, 작은 방으로 향한 케이블은 거실을 통과하고 있어서 방문을 꼭 닫지 못할 뿐 아니라 집안에서 걷다 보면 케이블이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작업실 안에서도 바닥을 가로지른 케이블은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이건 사람 사는 집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거미줄이 가득한 거미집이었다.

그 해결책으로 생각한 것이 전화선을 이용한 홈네트워크였다. 방마다 나와있는 전화선은 모두 건물 내부에서 이어진 것이므로 그것을 이용해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법이다. 마침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판매하던 제품이 있어서 그걸로 실험을 해볼 수 있었다. 집의 PC 한 대에 랜카드와 함께 HomeLAN 카드를 설치하고, 다른 PC에서는 HomeLAN 카드만 단 채 전화잭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성해봤다.

최초에 테스트했던 것은 동작에는 성공했지만, 그 속도가 1Mbps밖에 되지 않아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다음으로 구해온 것은 비슷한 기능에 속도가 10Mbps로 올라간 새 버전이었다. 기존에 PC 사이에서 연결했던 100Mbps보다 훨씬 느렸기 때문에 인트라넷 접속은 크게 느렸지만 인터넷 접속 속도는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모든 네트워크 환경을 대체할까 생각해 보다가,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바로 이 전화선 네트워크 장치가 LAN 카드로만 구성되기 때문이다. 우선 기존의 인터넷 공유기는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고, PC 한 대는 인터넷 게이트웨이 겸 공유 기능을 위해 항상 켜놓아야 한다. 또한 프린터도 네트워크 포트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므로 패러렐 포트를 통해 게이트웨이 컴퓨터에 물려놓아야 한다. 훨씬 네트워크 운영의 자유도가 떨어지는 셈이다.

더구나 모든 방에 전화 콘센트가 나와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 위치도 고정돼 있으므로, 각 방 안에서 또 전화선을 길게 연장해서 써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더구나 아들내미의 매킨토시는 HomeLAN이 지원하지 않는 문제까지 있다. 집안이 약간 정리된다는 장점을 위해 이런 문제점을 감수하면서까지 전화선 네트워크를 설치하여 예전보다 훨씬 느려진 속도를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사용하지 않기로 결론이 내려졌다.

일이 여기까지 이르자 이젠 확실한 결론을 내리고 싶어져서 최후의 한 가지 방법을 고려하게 됐다. 바로 무선 랜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전에도 무선 랜을 실험해 본 적은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1Mbps 속도밖에 지원되지 않는 비표준의 초기 제품이었고, 매킨토시는 물론 윈도우 2000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생각한 것은 11Mbps의 비교적 높은 속도를 낼 뿐 아니라, IEEE 802.11b라는 국제 표준으로 무장한 것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회사의 제품끼리도 통신이 가능하고 매킨토시에서도 지원이 되므로 예전과 같은 실패는 없을 것으로 보였다. 또한 LAN 공유기능을 가진 모듈도 판매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필자가 관심을 갖고 살펴본 결과 오리노코라는 제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집에 있는 모든 기존 시스템을 바꿔 버리는 데는 거의 백만원 안팎의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현재의 입장에서는 그리 쉽게 소비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또한 11Mbps라는 속도 또한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어서 기존의 100Mbps 속도의 인트라넷을 사용하던 것보다는 훨씬 느리다. 그 속도마저도 이론상의 최대값이고, 거리가 멀어지거나 주변에 잡전파가 많이 발생할 수록, 또 방 사이의 벽의 두께와 갯수와 재질에 따라서 그 성능이 떨어진다고 한다.

사용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끔 접속이 끊어지는 제품도 있다고 한다. 더구나 업계에서는 벌써 54Mbps의 속도까지 낼 수 있는 802.11a 규격의 제품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는데 말이다. 결정을 내리기 참 힘든 상태이다.

지금 필자의 고물 박스에는 100Mbps 속도의 랜카드 서너 개와 8포트 허브 하나가 먼지만 쌓인채 버려져 있다. 시중에서 1∼2만원이면 새 랜카드를 구입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값싸게 홈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 상태인데, 이런 것들을 다 버리고 어느날 갑자기 무선 랜 환경으로 옮기는 데는 약간의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변수도 존재하고, 또 앞으로 나타날 더 우수한 신제품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결국은 무선으로 가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그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어쩌면 거미줄은 없애야겠지만, 거미는 죽이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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