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조상 모시기

By | 2001-10-05

직업군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필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어느 한 곳에서 뚜렷이 만들지 못했다. 태어난 것으로 따지면 충청북도 어느 시골이었고, 그 뒤로 인천, 원주, 제천, 대전 등에 살다가 서울에 자리 잡은 지 20년이 다 되었다.

그래서 간간히 기억나곤 하는 유년의 기억들은 어디에서 각인된 것인지 제대로 알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이처럼 고향이 딱히 어디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바로 웃대 어르신들이 살고 계신 대전이 아무래도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해마다 설이나 추석이 되면 교통대란에도 어쩔 수 없이 귀성 대열에 합류해서 차례상과 묘소 앞에서 조상께 절을 올려왔다.

올 추석도 예외없이 차례를 지냈는데 그 과정에서 문득 발견한 사실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차례상이 꽤 작은 것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 위에 놓인 음식들의 가짓수도 줄어들었으며 양도 예전처럼 그릇을 넘쳐 날 만큼 많지 않았던 것이다.

차례를 끝내고 식사를 하면서 오고간 대화 속에서도 앞으로 있을 많은 변화를 예측할 수 있었다. “난 죽으면 화장을 하련다”라든가, “차례상 규모를 이보다 더 줄여야 한다” 등과 같은 내용의 말씀을 어른들이 하셨다. 그리고 역시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을 통한 차례 준비에 관한 이야기도 오고 갔음은 물론이다.

필자도 이번 추석 행사에는 인터넷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언제 내려갈 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도로공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경부고속도로 각 구간의 상황을 실시간 동영상으로 확인한 후에 출발했던 것이다.

덕분에 내려가는 길은 거의 막히지 않고 여유로울 수 있었다. 실제로 차례를 준비하는 데 있어 인터넷을 이용한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도 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는 인터넷 쇼핑을 통해 추석 선물세트를 주문하거나 아예 선물받을 상대에게 직접 배달되도록 하는 서비스가 있다.

더 나아가서는 차례상에 올라가는 제수 음식 전체를 인터넷으로 배달하는 방법도 생겨났다. 또 한편으로는 인터넷으로 묘소 벌초를 대행해주는 업체도 나타났는데, 벌초한 결과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이메일로 알려주기까지 한다.

이같은 서비스는 예전에도 물론 있었다. 시장에서 사온 차례 음식으로 추석이나 설을 쇠고, 또 벌초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 있었고, 전화를 통한 육성의 대화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만든 차례 음식을 사고, 또 벌초를 맡기기까지 한다. 따지고 보면 애초부터 제수 음식이 후손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어 준비되는 것도 거부감을 주었던 게 사실이다. 후손들이 직접 정성을 듬뿍 담아서 준비하지 않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아직은 대다수의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추석 때, 작은 사촌형님 댁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장자가 지내는 조부모님 것과는 별도로 차례를 지냈는데, 이때도 컴퓨터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현고학생 부군신위(顯考學生 府君神位)’로 시작되는 지방(紙榜)을 만들 때 예전 같으면 한자로 된 지방을 직접 쓴다는 것은 엄두도 못냈을 터인데, 워드프로세서 덕분에 잉크젯 프린터로 말끔히 인쇄해서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손의 육필이 아니라서 문제가 있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제대로 만들지도 못할 지방이었다면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편이 훨씬 나아 보인다. 이런 식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으로부터 차례를 더 발전적으로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과 같이 인터넷과 과학기술이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시대에는 차례를 지낸다는 행위 자체가 어찌보면 시대에 영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차례는 단순히 조상을 모시기 위해서만 행해졌던 일은 아닌 것 같다. 추석이란 명절은 대가족 제도 아래서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작업하는 공동체적 의미를 가진 행사였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핵가족화, 그리고 개인주의로 돼가는 사회에서는 현재의 방식으로 몇 대 위까지의 조상을 섬기는 일이 예전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끌기는 힘들 것이다. 어쨌든 우리의 미풍양속이랄까 혹은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차례 문화이기에, 뭔가 새로운 차원의 조상 섬김 문화를 정립해 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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