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돌려다오

By | 2001-09-27

요즘은 초등학교라고 부르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국민학교에 불리던 그 곳에 여덟 살의 나이로 입학할 때까지 필자는 한글을 읽거나 쓰지 못했다. 필자 또래의 사람들이 다들 그랬다. 사람이 나이는 어릴지라도 자기 이름 석자는 쓸 줄 알아야 한다면서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내 이름을 그림처럼 기억하여 그려낼 수 있을 따름이었다.

그 당시 그 나이에 한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라면 동네에서 인물났다고 소문이 자자했을 것이다. 주위를 보면 어릴 적에 동네에 신동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필자는 그런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올해 여섯 살난 우리 아들내미는 벌써 한글 읽기를 거의 다 깨우쳤다. 차를 타고 가면서 옆의 버스 광고판을 읽어대기도 하고, 외국 영화를 볼 때 화면 아래쪽에 나타나는 한글 자막을 소리내어 읽기도 한다. 아직 읽는 속도가 느려서 긴 문장은 읽는 중간에 끊기기도 하고, 연음이나 된소리같은 음운 규칙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해서 그렇지 꽤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전혀 남다르지가 않고 또 이것이 동네에 소문날 일도 아니다. 얘만 그런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 그 또래 아이들은 흔히 그 정도 읽기는 할 수 있다. 유치원같은 시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방문교육과 온갖 텔레비전 프로그램, 그리고 비디오 등이 주위에 줄줄이 널려있으니 그런 지적 조숙함도 당연한 것 같다. 한편으로 그것은 바로 우리의 글이 ‘한글’이라는 사실 덕분이기도 하다.

그래도 글쓰기는 읽기보다는 많이 떨어진다. 아직도 유치원에서 매일 숙제로 내주는 단어를 보면서 따라 그리는 수준이다. 그런데 아내는 아이의 글자 쓰는 수준이 나랑 비슷하거나 오히려 낫다고 말한다. 사실 비교해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필자가 지금 연필로 글자를 쓰면 아들내미랑 비교해 볼 때 큰 차이가 안 난다.

사실 정작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글자가 삐뚤빼뚤 못생겼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처럼 못생긴 글자인데도 노트북 한 페이지 정도를 필기하고 나면 필자의 오른팔은 여기저기 쿡쿡 쑤실 정도로 피로해 지는 것이 진짜 문제다. 더구나 쓰는 속도마저 남보다 두 배 정도 느리니 할 말은 다한 셈이다.

이 때문에 중, 고, 대학교 다니는 동안 필기란 것을 별로 해보지 않았고 교과서도 손때만 묻었을 뿐, 그 인쇄면은 처음 구입했을 때와 거의 같을 정도로 깨끗한 상태로 매 학기를 마쳤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을 받아 적어주는 기계를 꿈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의 필자는 글쓰기를 즐긴다. 회사에서도 리포트나 전자메일을 잘 활용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이렇게 컬럼도 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신문이나 잡지 등에도 다양하게 글을 써온대다가 예전에는 두 권의 컴퓨터 관련 서적도 펴낸 적이 있고 앞으로는 문화현상에 대한 책을 펴내려고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과연 무엇이 필자를 이처럼 변화시켰는가?

두말할 것 없이 컴퓨터가 일등공신이다. 필기도구를 손에 집어들고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키보드에 두 손을 올려 놓으면 밤새도록이라도 채팅을 하거나 글을 써 나갈 수 있다. 컴퓨터 사용 초기에 독학으로 익힌 타자법 덕분에 타이핑 속도도 꽤 빠른 편이다. 정말 컴퓨터가 아니었으면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인간으로 남아있을 뻔 했다. 그리고 컴퓨터에 앞서 감사해야 할 존재가 있다. 바로 ‘한글’이다.

손으로 글을 쓰던 시절에는 미처 몰랐다. 한글의 위대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과학적이고 효율적이며 독창적인 면이 점점 느껴지는게 아닌가. 아하! 그랬다. 굳이 로마문자를 평가절하하려는 것도 아니고, 다른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문자체계를 외면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한글은 정말 우리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필자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한글은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주는, 우리가 최소한 한 가지 만큼은 분명히 남과 다르게 내세울 수 있는 문화라는 사실이다. 그저 독창적이거나 자기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닌, 세월이 갈수록 더욱 유용해지면서 또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한 일이다.

이제 며칠 지나면 한글날이 된다. 사실 무슨무슨 날이라고 정해놓고 그 날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 중요함을 매년 한 번씩이나마 깨우쳐 줄 수 있다면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는 한글날을 제대로 기념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아니, 기념 차원이 아니래도 좋다. 한글을 제대로 대접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글의 오용과 남용에 관한 문제라면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뭔가 비싸고 고급이고 우아하게 보이고 싶은 곳에는 거의 반드시 영문이 들어가고 있는 세태에 대해서도 불만이긴 하지만 일단은 옆으로 치워 두련다.

그런 저런 불만은 덮어두고, 정작 필자가 주장하고픈 것은 바로 ‘한글날’을 ‘국정 공휴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의 생각에 공휴일은 수많은 기념일 중에서 그 중요도에 따라 정해지는 듯하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중요한 한글날은 과거에 공휴일이었다가 지금은 일반 기념일로 추락했을까. 정책 결정자들이 그만큼 한글이라는 것에 대해서 우습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필자가 한글날을 즈음해서 소원하는 게 두 가지 있다. 첫째는 한글날의 국경일 회복이다. 주 5일제의 입법을 앞두고 기존의 다른 공휴일도 줄여야 될 지경이라고 한다면 다른 공휴일을 없애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련다. 가장 좋은 후보는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이다.

우리나라가 불교국가도 아니고, 기독교 국가도 아닌 바에야 일부 국민이 신자로 있는 특정 종교를 국경일로까지 만들 이유는 전혀 없다. 누군가의 생일을 국경일로 만들려면 차라리 우리 국민 모두에게 공통으로 직접 관련이 있는 세종대왕의 생신을 공휴일로 만드는게 맞는 이치리라. 이 땅에서 살고있는 한국사람 치고 한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두번째 소원은 직장 입사시험에서나 대학 졸업 자격 시험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는 TOEIC 따위의 영어시험처럼 한국어 시험 제도를 만들어 모든 공무원에게는 필수 시험과목으로, 일반 기업과 학교에는 강력 권고 사항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집에는 영한이나 한영사전을 한 권씩 혹은 그 이상씩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국어사전은 별로 안가지고 있다는 점은 참기 힘든 모욕적인 사실이다. 제발 한글 맞춤법이나 단어가 틀린 것도 영어단어나 영문법 틀렸을 때처럼 창피하게 생각하게 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얼마전 인터넷에서 나돌았던 TOKIC 시험 유머가 더 이상 유머가 아니게 되었으면 한다.

인간은 산소가 없으면 단 몇 분도 생존하지 못하지만 주위에 널려있는게 산소라고 생각해서 보통은 그 고마움을 모르고 있다. 한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 보자. 우리가 컴퓨터를 이처럼 편하고 자유롭게 사용하며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은 한글 덕분이다.

한글이 없다고 상상해 보라. 필자가 지금 중국 한자를 가지고 혹은 일본의 가다카나, 히라카나, 간지 등을 이용해서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더 나아가서는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주고 있는 ‘한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자. 필자가 잃어버린 ‘한글날’을 되찾고 싶어하는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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