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와 함께 일하던 제품 개발 직원들이 회사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옛 직장을 떠나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 약 2달 전이었다. 어제 오랫만에 그들을 만났는데, 지금은 모두 같은 벤처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별 생각없이 새 회사는 어떠냐, 일은 할만 하냐는 등의 일상적인 질문을 던졌을 때 그들의 대답은 이구동성이었다. “힘들어 죽겠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거의 매일같이 밤 12시에 육박하고, 회사에서도 일에 파묻혀 있다가 잠깐 휴식을 가지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또 쌓여가는 일거리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아예 앞만 쳐다보며 아무 생각없이 일한다고 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올해 말에 있을 결혼식만 기다리면서 신혼여행이 유일한 휴식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고, 또 다른 사람은 농담조로 과연 신혼여행을 갈 수 있을까라고 놀리고 있었다. 그들이 피로를 느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토요일에도 거의 종일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 5일 근무제. 우리는 미국계 회사의 한국 지사에 근무하고 있었고, 따라서 당연히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를 쉬는 근무 방식을 취했다. 몇년 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갑자기 벤처 기업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토요일까지 일을 하는 것은 쉽게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 번 몸에 밴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그래도 2∼3년 전에는 다들 국내의 일반 토종 기업에 근무했었기 때문에 옛 생각을 하면서 제자리를 잡고 있는 듯 했다. 필자의 경우에는 훨씬 여러 해 동안 주 5일 근무를 했고, 또 그 전에 대기업에 다니던 시절에는 토요일 격주 휴무였기 때문에 지금 다시 매주 토요일을 강도 높게 근무해야 한다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두 피로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누구 말처럼 “넌 너무 놀았어”라는 말을 절실하게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부터 계속 논의돼 온 주 5일 근무제의 국가적 도입이 아직 해답을 못찾고 있는가 보다. 노동단체에서는 내년 1월 1일부터 전면 실시를 해야 한다고 버티고 있고, 또 경제단체에서는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추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번 미국 테러 사건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을테니 조기 시행은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여당과 야당의 대치 상황으로 인해 올해 안에 입법화하는 것조차도 힘들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들 말만 무성할 뿐이다.
필자도 사회 생활 초기에는 오랫동안 토요일 근무를 했었다. 토요일이라고 해서 오전 근무만 한 것은 아니고 거의 평일 수준만큼 일을 했다. 하긴, 평일의 퇴근 시간이 일러도 밤 9시는 넘어갔으니 토요일 근무시간이 다른 날보다 적기는 했다. 아뭏든 남들이 토요일 오후 스케줄을 잡는 것을 보며 필자는 ‘오늘은 회사가 아닌 곳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이런 식으로 토요일 근무를 했기에 그 직장에서는 모두 일주일의 요일을 얘기할 때 농담삼아 ‘월화수목금금일’이라고 했다. 그 말처럼, 오전 근무를 하는 토요일은 없었다.
정말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된다고 할 때, 궁금해지는 게 있다. 지금도 밤낮없이 일하고, 토요일도 없이 혹은 일요일까지 근무를 하곤 하는 우리의 벤처 기업들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될까.
현재는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업체들이 일부에 불과하므로 상대적 불평등감이 적다고 할 수 있는데, 공무원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기업이 토요 휴무제를 시작하고 각급 학교들까지도 토요일엔 문을 닫아 버린다면 벤처 기업들은 과연 어떤 식으로 근무를 하게 될 것인가. 정부시책에 맞춰 토요일과 일요일을 휴무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하던 식으로 월-화-수-목-금-금-일 혹은 월-화-수-목-금-금-금 방식이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인가?
물론 지금 현실에서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들의 근무 패턴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단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어떤 것이 바람직한지 말하라면 그건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만약 그런 업체의 직원이라면? 그와는 반대로 필자가 만약 그런 업체의 CEO라면? 그도 아니면 투자가라면?
이 사안과 관련해서는 경제 상황을 거론하는 것도, 시대에 걸맞는 수준의 개인 여가 보장을 요구하는 것도 모두 일리있는 주장으로 들린다. 그만큼 주 5일 근무제 전면 실시 배경의 효과와 부작용은 여러 가지로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필자는 주 5일 근무제의 조기 실시를 강력히 찬성하는 입장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모습을 보면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그중에서도 특히 벤처 업계라는 종류의 회사들에서 미래 비전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거의 착취에 가까운 과도한 근무가 자행되고 있음이다. 어쩌면 그들은 토요일 휴무는 커녕, 오전 근무만이라도 제대로 해봤으면 하는 심정일 수도 있다. 이번 주 5일 근무제 도입은 ‘Work-Life Balance’를 구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휴식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주중에 밤늦게 일하는 것은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매주 찾아오는 금쪽같은 휴식 시간은 보장해줘야 할 것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Workholic’이 아닌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일주일을 살고 있는가?
내년 이맘 때쯤이면 우린 어떤 일주일을 살게 될까? 정부와 경제단체와 노동단체들만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작은 듯하다. 여러분도 어디 한 번 제대로 된 의견을 내어 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