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벤처

By | 2001-07-18

이번 주에는 필자의 말을 줄이고 한 독자가 보내온 메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장문의 메일을 다 소개하자면 지면을 너무 차지할 것 같아 중요한 부문만 발췌하겠다.

이번 2001년 1학기 대학원 수업을 오늘 종강하면서 한 학기동안 뭘 배우기 위해 그 비싼 대학원 수업료와 없는 시간을 쪼개면서 대학원 수업을 들었나 싶습니다.

제가 실망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교수님의 수업에 대한 열정입니다. 전 이번에 2과목을 수강했습니다. 문제는 교수님 중 한 분이 벤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IMF 이후 정보통신 육성의 일환으로 ‘교수 벤처 창업’을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수 벤처의 빛과 그림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수의 풀타임 대학원생(학교에 상주하는 대학원생)은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 벤처의 회사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또한 여기 저기 시도 때도 없는 회의 참석에 휴강이 아주 보편화 됐다는 것입니다. 물론 휴강을 하면 보강을 하도록 돼있습니다. 그렇지만 휴강에 따른 보강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략 …

다른 교수님은 8번 휴강을 하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교수 창업을 하신 분이죠. 저희 학교는 15주 수업 중 1/3 이상 결석한 학생들에게는 학점 이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F를 준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이번에는 교수님께서 수업의 1/2을 휴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수강생 전체가 F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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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벤처 창업’이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학생들에게 열성적인 교수님들도 계십니다. 풀타임 대학원생은 자신이 연구한 것이 사업화 돼 많은 사람들에게 활용되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일부 학부생들도 참여해 앞으로 자신의 진로에 대한 결정과 회사 업무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수 벤처 창업’을 하신 교수님들이 교수직에 소흘히 하신다면 이것은 아주 큰 문제입니다. 지금 당장의 정보통신 분야 활성을 위한 ‘교수 벤처 창업’이 앞으로 정보통신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될 인력을 망치고 있습니다.

‘교수 벤처’를 하시는 교수님들이 창업을 하시기 전보다 학생들에 대한 열정을 더 할 수 없다면 ‘교수 벤처 창업’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 라는 점에서 더 이상 방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수 벤처 창업’을 하신 교수님들에 대한 대학 본부의 보다 정확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교수를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사업가가 될 것인지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창업하신 교수님들 교수 본연의 직책에 충실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이 글은 예전에 필자가 본 컬럼에 썼던 ‘벤처기업과 현대판 노비제도’를 읽고 나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하소연하고 싶어서 보낸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에 언급했던 것은 하이테크 과목의 교수 창업시에 대학원생이 마치 노비처럼 그 회사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얽매이는 경우가 있다라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마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연예인과 매니저의 노비 관계 보도 사건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방송출연 거부라는 비장의 무기도 없으니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일 것이다.

학생이 수업을 빼먹으면 F를 먹지만, 교수님이 빼먹으면 어찌되는가 라는 질문에서는 정말 그 심각성을 느낀다. 사실 그 교수님에게 F를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교수님들이 벤처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계속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필자는 법적으로나 학교 규정 면으로나 잘 아는 게 없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지 못하겠다면, 한 가지는 포기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럼으로써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좋은 인재에게 교수라는 신성한 자리를 넘겨줘서 보다 수준 높은 교육이 이뤄지게 하고, 학생들에게는 충분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교수 벤처도 학생들의 학업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이른바 BK21, 즉 두뇌한국21 사업이라는 것도 만만찮다. 얼마 전에 서울대 물리교육학과의 학부생과 대학원생 142명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는데, 그 이유는 BK21 사업을 위해 교수들이 다른 단과대학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교수 1명이 모든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지도하고 있고, 개설강좌가 31개에서 12개로 줄었으며, 그 1명의 교수가 맡은 과목 외에는 모두 시간 강사가 강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단과 대학이라고 하면 아마 정보, 통신, 반도체 관련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래서 사람들이 BK21을 ‘바보코리아21’의 줄임말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 아니겠는가.

정보통신을 비롯한 과학 기술의 발전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외적인 성과와 단기간의 연구에 의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 백년대계를 저버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벤처 업체를 창업한 교수님들은 과연 머리 속에 가장 높이 두고 있는 목표가 무엇일까. 그것은 교수님으로서의 목표일까, 아니면 벤처 사업가로서의 목표일까? 어느 쪽인지 솔직히 가려서 발길을 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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