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선인장

By | 2001-04-01

꽤 여러 해 전의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필자가 일하던 연구소 안에서 작업용 책상에 놓여진 수십 대의 컴퓨터 모니터들 옆에 조그만 선인장 화분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인장과 함께 컴퓨터 작업을 하는 모습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업무에 없어서는 안될 컴퓨터 액세서리가 되었을 정도였다.

처음엔 그냥 누군가 메마른 작업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시작했던 것이 여러 사람들에게 퍼졌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선인장 화분의 존재 이유를 듣고 나선 황당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방사되어 나오는 전자파를 선인장이 흡수해 준다고 소문이 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왜?”냐고 물었더니 “선인장 속에는 수분이 많이 들어있으므로 그 물이 전자파를 흡수 내지는 반사해 주지 않겠냐”라는 설명이었다.

아마도 물속에서는 전파가 잘 전달되지 않아서 잠수함에서는 물 밖으로 무전 교신을 직접 할 수 없다라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 모니터 옆에 물컵을 놓아두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그 곳이 한국에서도 몇째 간다고 하는 대기업의 연구소였고 다들 공학 계열의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인데도 다들 책상 위 컴퓨터 앞에 선인장이 놓여있었다는 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가 바로 컴퓨터의 전자파로 인한 폐해와 VDT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갑자기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을 때였다.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자식을 아예 못낳거나 설사 낳는다고 해도 딸만 낳게 된다는 이상한 이론이 제법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신문 광고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동전만한 크기의 뉴트랄이라는 수상한 제품도 등장해, 모니터 앞쪽의 네 구석에 하나씩 붙여 놓으면 인체에 유해한 전자파를 모두 중화해 준다는 헛된 믿음을 갖게도 만들었다.

그 당시 필자가 일하던 사무실의 컴퓨터들도 언제부터인가 선인장으론 부족해서 그 중화장치라는 것이 모니터마다 다닥다닥 붙어버렸다. 나중에는 키보드에서도 전자파가 방출이 되므로 키보드에도 붙여야 한다고 신문광고가 나는 바람에 키보드의 네귀 모두에 붙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당시 그것으로 떼돈 번 사람은 지금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전자파에 대한 범사회적 신드롬이 형성되면서 전자파 차폐를 해준다는 안경, 구두, 양복 등과 같은 것들도 등장했고, 임산부가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광고하는 앞치마같은 것마저 등장하기까지 했었다.

이제 그로부터 거의 10년 가까이 지난 서기 2001년의 어느 날이 됐다. 선인장이 놓인 컴퓨터는 볼 수가 없다. 모니터에 보기 흉하게 붙어있던 전자파 중화제 역시 살래야 살 수 없다.

컴퓨터의 수는 그 당시보다도 엄청나게 증가했는데 이런 사이비 보호 수단을 사용하는 현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일반 대중이 현명해져서 더 이상 근거없는 소문에 현혹되거나, 맹목적인 광고에 마음이 동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절대 다수의 사용자들이 어릴 적부터 컴퓨터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불편한 마음을 가지지 않게 됐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재래식 화장실에서 쪼그려 앉아서 일을 보던 사람들이 수세식 좌변기에 처음 앉게 되면 제대로 일을 볼 수 없고 꽤 여러 날 동안 익숙해 져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대다수가 어릴 적부터 그것에 익숙해져 왔고, 필자처럼 10대 후반기까지 쪼그려 앉았던 사람들도 세월의 힘 덕분에 이제는 좌변기가 더욱 편리해진 것처럼, 컴퓨터가 다들 몸에 철썩 맞게 됐고, 따라서 육체적으로 불편한 감을 덜 느끼게 되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가장 큰 이유는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만성이 되어서 전혀 관심을 안갖게 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안도감은 진짜 뭔가를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요즘에 쇠고기가 안팔리는 데에는 광우병의 역할이 큰데, 광우병의 잠복기가 자그마치 10년 내지는 20년까지 간다는 얘기를 듣고 보면 이미 우리 몸 속에 그 광우병의 씨앗이 뿌려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광우병처럼 전자파의 폐해는 우리 몸 속에 알게 모르게 쌓여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한 20년쯤 흘렀을 때 전세계적으로 급격한 이상 질환자의 발병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대해 근거없는 신경증적인 발상이라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전자파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온갖 논란이 있어왔는데도 아직껏 규명조차 제대로 안돼 있고 단지 학설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는 나날이 증가하는 전자 장치들의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광우병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의 절반만큼이라도 전자파가 우리 몸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선인장이나 전자파 중화제같은 것은 아무 효과도 없는 한때의 유행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컴퓨터와 건강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선인장은 삭막한 컴퓨터 환경을 아름답고 부드럽게 만들어주기도하는 긍정적인 심리적 효과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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