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을 바라보며

By | 2001-03-12

“떴다!” “야~ 빨리 숨겨!” 후다닥 쿵쾅. 남원고을에 암행어사가 출도하던 시절은 아니다. 그렇다고 중고등학교에서 예고없이 선생님이 출현했을 때 몰래 보고있던 성인잡지를 재빨리 숨기는 그런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직원들끼리 백지영 비디오 동화상 파일을 보고 있다가 사장님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벌어지는 소동은 더더욱 아니다.

바로 검찰, 경찰, 정통부, 소프트웨어 저작권 협회의 합동 단속반이 회사에 들이닥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상상해 본 것이다. 지난주 초부터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한국 정보통신 산업을 대표하는 테헤란 밸리에서 말이다.

이 단속에 대해 긴장하는 업체들도 많은데 그들의 대응책도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모든 컴퓨터에서 사용하고 있는 만큼의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 방법이겠지만 도저히 구입을 못 하겠다 싶을 때에는 아예 엽기적인 작전에 들어가기도 한다.

하드디스크를 착탈식으로 설치해 평소에 사용하는 것과 단속시에 사용하는 것을 따로 갖추는 방법. 업무는 노트북 컴퓨터에서만 하게 하되 회사에서는 외장 키보드와 모니터 등을 달아서 불편없이 사용하다가 단속반이 닥치면 노트북은 책상 서랍에 숨기는 방법. 아예 회사 문을 닫고 모두들 집에서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방법. 다들 PC 방에 가서 일을 하는 방법….

필자의 회사에서도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고 필요할 경우에는 모두 정품만 구입해 사용하게끔 하고 있다. 많은 수의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 정책을 쓰고 있지만 그래도 다들 고민은 있을 것이다.

회사 안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들이 모두 100.00% 정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이다. 가령 99%는 모두 정품이다라고 쳐도 나머지 1%의 불확실성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이 20명이라서 20카피의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구입한 회사의 경우, 갑자기 손이 딸려서 외부에서 계약직 사원을 한 명 데려왔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에게 남는 PC를 주고 OS를 설치하고 필요한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다 보면 그 회사에는 21카피의 오피스가 깔리는 결과가 돼버린다.

다른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20대의 PC를 쓰고 있었는데 5대의 PC가 노후돼 새 것으로 교체했고, 나머지 PC는 따로 모아 두었는데 그 구형 컴퓨터 속의 하드디스크 속에는 OS와 사무용 소프트웨어가 그대로 설치돼 있을 수 있다. 하드디스크를 업그레이드한다고 해도 만약을 대비해 이전 하드디스크는 포맷시키지 않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속반이 들이닥쳐서 그 PC들을 조사한다면? 구매량 이상의 카피 수가 그 회사에서 발견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 받는 쉐어웨어와 프리웨어의 혼선도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쉐어웨어에 대한 인식이 정확히 돼있지 않는 상황이다. 쉐어웨어를 프리웨어로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번 단속에서 쉐어웨어도 포함된다고 소문을 듣고 난 뒤에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소프트웨어를 언인스톨하거나 지운 것으로는 부족해 레지스트리에 쉐어웨어의 흔적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하드디스크를 새로 포맷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필자는 아직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모든 점들이 분명히 홍보가 안 된 상태에서 단속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른 업무의 시간낭비와 프로젝트의 차질 등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

물론 회사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는 모두 정품을 구입해서 써야 한다. 하지만 벤처기업을 지향하면서 몇 명이 모여 막 시작한 업체들이나 평소에 이런 정품 소프트웨어에 대해 신경 쓸 틈이 없었던 업체들은 그 정품 소프트웨어의 가격을 생각하면 막막하기 그지 없을 수 있다.

특히 3D 컴퓨터 그래픽 툴이나 CAD 소프트웨어들의 높은 가격을 생각해 보면 단 한 카피만 사기도 어려운 회사들도 많을 것이다. PC에 가장 먼저 깔리는 소프트웨어인 운영체제만 하더라도 윈도우 98에 비해 요즘 많이 사용하고 있는 윈도우 2000으로 넘어가면 가격이 수직 상승하게 된다.

단속에 앞서 소규모 업체들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단체 공급이나 소규모 벤처 기업판 등과 같은 대책을 통해 미리 도울 수는 없었는지 아쉬운 감이 든다.

이번 단속의 목적은 불법소프트웨어 복제를 막아서 소프트웨어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 다른 기업들이 불법복제를 하지 않도록 기회를 주고 미리 유도하는 정책이 선행됐다면 더 좋은 효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