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도둑과 소 도둑

By | 2001-03-04

독자 여러분이 지금 집에 있다면, 아니면 나중에 집에 돌아갔을 때 주위를 둘러보라. 혹시 회사 물건이 집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경우는 없는가? 볼펜이나 지우개, 디스켓, 혹은 복사 용지 등과 같은 회사 일용품들이 집에서 사용되고 있지는 않는가?

아니면 더 크게 봐서, 회사의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고 남은, 사용하지 않는 구형 하드 디스크나 메모리 모듈, 비디오 카드 같은 것들은 어떨까. 이런 것들을 집에 가져와서 사용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될까? 이런 것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에는 어떤 기준이 적용되고 있을까?

여러분이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이 일생에서 첫 번째 직장이 아니라면 한 번 생각해 보자. 예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얻은 경험이 얼마나 현재의 직장에서 활용되고 있는지를.

단지 경험이라고 한다면 전혀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그게 아니고 예전 직장에서 개발됐던 제품의 기술을 현재의 직장에서 개발하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면 그것은 또 어떤 기준으로 옳고 그름의 수준을 판정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아주 중요한 기술들이 모두 머리 속에 기억되고 있었던 것이라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만약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그 자료를 디스켓이나 CD-R에 기록해 가지고 나왔던 것이라면 그 내용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법적인 문제가 되는 것일까?

지난 달 몇몇 신문 지상에 소개된 두 가지 사건이다. 한 가지는 삼성전자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LG전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삼성전자의 경우에서는 수백억을 들여 개발한 이동통신 관련 기술 자료를 디스켓에 저장해서 빼낸 다음 이를 활용해 벤처회사를 설립하려 했다가 실패한 두 사람이 구속됐다고 한다.

LG 전자에서는 여러 해 동안 연구소에서 일하던 박사급 직원이 작년에 퇴직해 벤처회사를 세우고 나서 기술개발이 제대로 안 되자 회사 내부에 있던 사람을 통해 30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디지털 TV 핵심 기술을 CD에 구워 빼냈다는 소식이다.

위의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우선 “그런 짓을 하다니, 나쁜 사람들…”이라는 반응. 다음은 “쯧쯧쯧… 운이 나쁘군.” 혹은 “재수없이 시범 케이스로 걸렸군.” 등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뭔가 밉보인 짓을 했든지, 회사에 예쁘게 보이지 않아서야.”라는 반응도 있다.

이미 그 두 회사를 떠나서 다른 곳에 안주해 있는 연구원들인 경우에는 뒤가 켕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의 행동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도 당연히 ‘구속’까지 당해야하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 사람들이 회사로부터 가져간 정보는 과연 어떤 정도의 것이었기에 그 사람들의 일생에 치명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속까지 당하게 된 것일까?

사람들은 보통 회사 안에서 “만약을 대비해 챙겨놓아야 한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자신이 그 회사를 그만둘 때를 대비해 서류나 도면 등을 참조용으로 간직해 놓으라는 선험자들의 경험담이다.

이직할 당시의 자신의 몸값도 올리고 또한 다른 회사에서도 중요도를 높이려는 의도이기도 하고, 요즘같은 경우에는 그런 내용을 토대로 아예 창업까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들 이해는 가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도덕적인 면에서, 그리고 법률적인 면에서 그 한계를 생각하면서 그런 ‘챙김’을 하는 경우는 적은 것 같다.

더구나 힘이 막강한 대기업의 경우에 그 기술이 도둑맞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상당히 자의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또한 그에 따라 위의 경우처럼 생각지도 못한 형사사건에 연루될 수도 있다는 점까지 생각해야 한다.

불행히도 위에서 소개한 신문 기사 속의 한 사람은 필자도 그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안면이 있는 사람으로서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박사까지 받은 중요한 30대 후반의 재원이다. 그녀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폐인이 되는 위기에 이르렀다.

이번 일을 남의 일로 여기지만 말고 한 번쯤 생각해보기 바란다. 회사물건을 집에서 쓰는 것부터 시작해 회사의 지적 재산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일에 대해서까지. 과연 어디까지가 옳고 어디까지가 그른 일일까?

내가 퇴직해서 동종 업계의 다른 회사로 옮긴다고 할 때 나는 과연 무엇을 가지고 가려고 할까? 어차피 정해진 기준이 희미한 상태이므로 나름대로의 잣대를 만들어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의 일생이 달린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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