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이름을 대면 독자 여러분 중에도 아는 사람도 많을 만한 어떤 중견 컴퓨터 관련회사에서 요즘의 인터넷과 리눅스 붐에 합류하기 위해 리눅스와 관련된 벤처 회사를 새로 세웠다.
프로그래머를 모집하고 기획 인력도 스카우트해오고 사무실도 장만해 제법 번듯한 모습을 만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정작 사장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래서 이곳 저곳 수소문하고 다녔는데, 그 이야기가 필자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보고 대표이사직을 맡으라는 것은 아니었고(물론 시켜줘도 안 할 것이고 할 만한 능력도 없지만, 조금 섭섭한 것은 사실이었다), 쓸만한 사람을 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 가운데 후보자가 있을지 살펴보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 벤처회사는 계속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고 애타게 CEO 재목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누군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CEO가 되겠는데, 요즘엔 거꾸로 되는 일을 많이 보게 된다.
다행히 그 회사는 최근 CEO를 영입했다고 들었지만 그동안 금쪽 같은 시간을 허비한 셈이 된다.
[두 번째 이야기]
또 다른 회사에서 필자에게 새 회사의 CEO를 구한다며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물론 필자는 해당이 안 됐다. 남 좋은 일만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침 누군가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추천했다.
그 사람에 대해 대충 프로필을 얘기하고 나니 상대방에서 하는 말. “듣고 보니 괜찮은 분 같긴 한데, 좀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그 회사에서는 KAIST 출신, 아니면 서울대 공대 출신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즉, 업계와 과학 기술계 전반에 형성돼 있는 인맥을 활용해야 한다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결국 필자의 대답은 “전 그 학교 출신이 아니라서 별로 아는 사람이 없는데요”였다.
CEO는 과연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얼굴마담인가. 현실적으로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 그래서 더욱 슬픈 벤처 설립자들도 많을텐데.
[세 번째 이야기]
벤처회사에 투자를 하는 창투사들은 투자 대상 회사의 사장에 대해 전체 평가의 70%를 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벤처회사에 있어서 CEO의 개인적 자질과 능력이 중요시된다는 말이다.
그 자질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앞의 두 번째 이야기처럼 학력과 인맥도 포함될 것이지만, 그보다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그 아이템을 운영해 어떤 결과를 추구하려고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엔지니어 출신의 많은 벤처 사장들은 기업 설명회에서 자기 회사의 기술이 이렇게 좋다느니, 사원들의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느니, 혹은 세계 최초 최고라는 등을 떠들어대곤 한다.
하지만 정작 수익구조나 Exit Plan, 혹은 추정 매출 등과 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든지, 아니면 그런 질문은 무조건 돌파하려고 하는 일이 많다.
본인이 뭔가 세계 최초라고 생각하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때 무조건 최소한 다른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자기가 그것을 사업으로 옮겼다면 최소한 다른 10명 이상의 업체가 그것과 꼭 같은 것을 하고 있다고 위기감을 느껴야 하는데, 많은 CEO 내지는 예비 CEO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시장조사나 특허조사 같은 것도 빼먹기도 한다. 물론 일부 바보(?) 같은 투자가들이 있어 그런 벤처에 투자하는 일도 있으니까 그런 바보 같은, 혹은 불순한 사이비 벤처들도 간혹 뜨기도 하는 것이리라.
[네 번째 이야기]
매스컴을 많이 타서 유명한 어떤 컴퓨터 컬럼리스트가 몇 달 전 여러 대기업이 함께 투자해 세운 웹마케팅 회사의 CEO로 초빙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위치는 오래 가지 못했다. 경영부실을 이유로 해고된 것이다.
해고된 사장은 물론 그 대기업들의 지원이 부실해 제대로 운영을 할 수 없었다는 비난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벤처기업들도 그런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곤 하는데, 이런 벤처들은 보통 중견 이상 대기업에서 세운 것이 보통이다.
또 한편으로는 10여 년씩 일반 사원으로 있던 사람이 갑자기 기업을 운영한다고 할 때 흔히 부딪치는 문제가 시스템의 차이가 된다. 시스템에 적응해 살던 사람이 시스템을 만들기가 그처럼 어려운 때문이다.
자신이 회사를 세워서 CEO가 되는 것도, 폼은 날지 모르지만 쉽지가 않다. 쓸만한 CEO를 찾기도 참으로 힘이 든다. 그리고 정작 CEO가 된 다음에 제대로 회사 내부와 외부의 일을 모두 꾸려나가는 것도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도 않다.
그대는 지금 CEO의 꿈을 꾸고 있는가?